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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캐릭터 게임

캐릭터 게임은 많은 게임플레이가 인물의 기호로서의 캐릭터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비슷한 층위에 놓인 많은 수의 캐릭터 중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거나 정하고 그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가리키기 위해서 내가 쓰는 말이다. 대부분의 대전격투 장르의 게임이 이에 해당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롯한 MOBA 장르도 장르 자체가 이런 성향을 띈다고 할 수 있다. 액션 장르에서는 무쌍 시리즈가 이런 게임으로 설명될 수 있겠고, SRPG에서도 병종보다 캐릭터가 좀 더 중요하다면 이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슈퍼로봇대전 프랜차이즈가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그런 캐릭터를 수집하고 강화하는 것을 BM에 강결합시킨 캐릭터 수집형 게임들이 많다.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즐기는 것은 캐릭터가 가진 게임 메카닉적인 부분과 메카닉적이 아닌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람머스의 구르기나 하이머딩거의 포탑 설치, 진의 궁극기나 샤코의 플레이스타일같은 요소들이 독특한 재미를 주는 것은 메카닉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데 유리한 성능과는 별도로 그 캐릭터를 계속 플레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 캐릭터 수집형 모바일 게임 등에서 캐릭터의 외형과 스토리 등의 캐릭터성을 기반으로 애착을 갖는 것은 메카닉과 상관없이 가능한 일이다.

캐릭터 게임에서 가능한 일이 있다면, 그 게임의 '진짜 장르'의 '게임성'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빈약하거나 반복적이고 '발전이 없다'는 평가를 들어도 게임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액션 게임으로서 반복적이고 크게 다르지 않은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무쌍 시리즈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몇십시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 SRPG로서 지형, 방어적인 플레이를 무시하고 체력이 높은 보스를 반복해서 공격하는 것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는 난이도에서 슈퍼로봇대전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로봇을 육성하여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

나는 대전격투게임을 잘 플레이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오락실에 다니며 KOF 시리즈에 꾸준히 동전을 넣어왔다. 이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반응속도를 포함해서 상대 캐릭터의 공격 방식과 그에 맞는 대응을 머리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식 없이도 그걸 플레이하는 게 즐거웠다. 그냥 버튼을 연타하면 랄프와 클락이 발칸 펀치를 쓰고, 이오리가 초필살기 효과음 뒤 스르륵 미끄러지며 팔치녀가 나가는 걸 보는 게 즐거웠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즐기기 위해 플레이한 대전격투게임은 『Skullgirls』도 있는데, 이 때 튜토리얼을 플레이하면서 '게임이 요구하는 기본적 조작'이 어느 수준인지를 엿보고 나서야 이 장르 게임들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

나는 여러모로 캐릭터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캐릭터 게임을 즐기는 데에 있어서 '고도의 게임성'은 때로 방해가 된다. 안이하게 '오픈월드'를 시도했다가 나쁜 평가를 받은 『진 삼국무쌍 8』 이후 액션게임으로서의 기본적인 부분을 쇄신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진 삼국무쌍 ORIGINS』는 체험판을 해 보고 바뀐 게임플레이에 숨이 막혀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전격투게임과 MOBA 장르의 PvP 환경은 게임을 수천시간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깊이를 주지만, 그 무대에 올라가기 위한 진입장벽과 밸런스를 위해서 수시로 깎여나가는 캐릭터의 성격은 게임의 '캐릭터 게임'에서 멀어지고 '진짜 장르'에 다가가려는 거대한 인력으로 작용한다. 슈퍼로봇대전이 유닛들의 특성을 깊이 고찰하고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해서 '안이한 플레이'를 더 처벌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유닛과 파일럿을 키워서 그들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가?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의 스토리 모드를 플레이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철권 7』에서 CPU 헤이하치를 넘기지 못한 기억도 떠올린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ASB』의 공들인 연출이나, 『사립 저스티스 학원』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스쳐지나간다. 봇을 상대로 하이머딩거나 아바투르를 몇십판을 플레이하던 기억도 스쳐지나간다. 프랜차이즈 지속의 위기를 겪은 무쌍과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캐릭터 게임이라는 방향성은, 오늘날 살아남기에 너무 안일한 방향성인가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