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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반증과 방증

반증(反證)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쓰임이 있다. A라는 존재가 B라는 주장/묘사를 반증한다, 혹은 A라는 존재가 B라는 주장/묘사에 대한 반증이다 라고 쓰인 경우, A라는 사례가 존재하는 것을 따져보면 B라는 주장/묘사의 설득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으로는 반례 A를 드는 것, 명제 B가 참이라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했을 때 모순이 발생하는 과정 A를 보이는 것이 반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순서를 따라 이것을 반증①이라고 하자. 반증① 대신 쓸 수 있는 말을 찾자면 근거를 들어 반박하다 같은 말이 될 것이고, 영어로는 Counterexample 같은 단어와 닿아있을 것이다.

반증②는 A라는 존재가 일견 B라는 주장/묘사와 모순되는 것 같지만―즉, A라는 존재가 B라는 주장/묘사를 반증①하는 것 같지만―오히려 B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용례에서 "A를 보고 ¬B를 연상/이미지하기 쉽지만, 실상은 너무 B하기 때문에 A가 두드러진 것이다"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논리기호를 동원해 표현하기는 했지만, ¬B와 B는 엄격하게 서로를 부정하는 명제나 반대 개념을 가리킬 필요는 없다.

소위 구제니 자선이니 하는 것을 향기 있고 아름다운 말이나 행위로 알지만, 실상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반증밖에 아니 되고, 그 어느 구석에든지 이기적 충동이 있다고 보이는데요…….
<<염상섭, 만세전>>, 네이버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반증 항목에서 재인용

반증② 대신 쓸 수 있는 말을 찾자면 역설적으로 뒷받침하다 같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ironically/paradoxically와 support/claim같은 단어를 조합하여 표현할 것 같은데, 예문을 찾지는 못했다.

방증(傍證)은 A라는 존재가 B라는 주장/묘사를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는 것, 혹은 A가 존재하는 것이 B라는 주장/묘사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러 글을 읽다보면 반증한다는 말을 꽤 자주 발견하게 된다. 많은 경우 반증①보다는 반증②를 의도하고 썼으리라 짐작하는데 맥락을 살펴보면 A가 B를 '역설적으로'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는 경우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방증을 쓰면 더 적합해보이는 경우가 꽤 보인다. 따지고 보면 방증조차 아니고 그냥 뒷받침하다(증거하다?)를 쓰는 게 적합해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냥 반증이라는 말이 멋져보여서 쓰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A와 B는 일견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B 때문에 A가 생긴 것이다" 정도로 쓸 수 있는 것 같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A와 B가 무관해보인다는 통념에 '반하여' A가 B의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활용방법으로 빚어나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무언가에 반(反)하지 않는데 반증이라는 말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반증②와 방증을 헷갈리는 글에 대한 누적된 분노로 작성된 글이긴 하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는 내일 올라갈 글감이 마땅치 않아 딱히 예시가 없더라도 이 꼭지의 글을 오늘 작성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쓰인 글이라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기 어렵다. 발견할 때마다 업데이트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