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타인의 얼굴
저자: 아베 고보(安部公房)
역자: 이정희
출판사: 문예출판사
출간일: 2007년 5월 30일
원서명: 他人の顔
원서 출간일: 1964년
생각
『타인의 얼굴』은 아베 고보의 유명한 작품입니다. 『모래의 여자』에 이어 나온 작품으로, 이후에 나온 다른 한 권을 포함해서 실종 3부작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대표하는 작품군이라고 합니다. 이 책도 『존재론적, 우편적』과 비슷하게 읽게 되었는데, 와이프가 이 책에 수식이 하나 나오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읽고 나서 알려달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지녔지만, 화학물질에 의한 사고로 얼굴을 '잃은' 남성이 주변과의 마찰, 특히 아내와의 사이에서의 불만을 계기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고 그 가면을 쓰는 것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사회와의 연결을 되찾으려 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이라고 불리는 독자에게 보내는 세 권의 수기 형태로 된 이 소설을 읽으며, 화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궁금해며 읽게 되었습니다.
화자는 끊임없이 얼굴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독백을 계속 하며 자신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 선을 따라가면서 이 사람이 겪었을 고통에 이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절정 부분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괴로울 수밖에 없었고, 결말까지 화자의 감정을 따라가며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자기 자신이 만든 가면이고 그 가면을 썼을 뿐인데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 마치 가면이 자기 자신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하는,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지하는 묘사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화자의 생각을 비판 없이 따라가는 건 위험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어떤 가면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가면을 쓴다는 것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 소설의 화자는 본인이 직접 만든 가면을 쓰고, 그것을 의식하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서술하여, 우리가 가면을 쓰는 것의 의미를 상기시킵니다.
저는 가면 뒤의 인간과 가면의 이분법이 불안합니다. 화자가 매몰된 상태와 같이 모든 종류의 가면을 기만이라고 결론내리고, 좋은 가면을 추구하는 허영을 고발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권장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면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 공격 행위로 보호하고자 했던 가면 뒤의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페르소나 5』에서 가면을 떼어낼 때 얼굴에서 피가 나듯, 가면이란 그것을 쓴 인간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스스로가, 혹은 사람들이 가면으로부터 분리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전부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일본 사회에서의 한국인,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과 같은 편견을 가지고 대해지는 사람들에게 연민하고, 그 처지를 자신과 비교합니다. 저는 그 연민에 제 멋대로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라는 사람과 무관하게 평가받는 것'에 대한 제 분노를 덧씌우게 됩니다.
『천 개의 고원』에서 얼굴을 다루던 꼭지가 문득 떠오릅니다. 뭐라고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책이 책장에 꽂혀 있지 않으니 확인할 도리가 없네요. 이래서 책을 사 둬야 하나 싶네요.
아, 그리고 그 수식은 정말 별 거 없었습니다. 저는 함수 f(·)같은 식으로 표현해 놓고 그 안에 굳이 1/n을 집어넣어서 f(1/n)처럼 써 놓는 건 그다지 정이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