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조선은 청제국에 무엇이었나
저자: 왕위안충(Wang Yuanchong)
역자: 손성욱
출판사: 너머북스
출간일: 2024년 8월 15일
원서명: Remaking the Chinese Empire: Manchu-Korean Relations, 1616–1911
원서 출간일: 2018년
생각
『조선은 청제국에 무엇이었나』는 청과 조선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다루는 역사서입니다. 조공-책봉 관계의 한 사례로 여겨지던 청과 조선의 관계를 청의 성립 과정과 근대의 격변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종번관계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붙인 저작입니다. 디스이즈텍스트에서 구매한 책 중 한 권인데, 그 당시 읽던 대체역사 웹소설에서 청과 조선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같은 설명을 읽은 게 계기가 되어 고르게 된 책입니다. 어느 소설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기상으로 『Ex급 도끼로 조선 재벌』일 것 같네요.
만주족의 국가 후금이 청이 되어 명을 대체하고 중국이 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청의 대외 관계의 모델로 중요했던 조선을 묘사한 1부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진출에 의해 청과 조선의 기존 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다룬 2부로 나뉩니다.
청이 명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한족이 운용하던 체계에 동화되었다거나, 청의 만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청이라는 왕조의 성격을 설명하려는 여러 관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청이 중국, 혹은 천조가 되기 위해서 명의 제후국들과의 관계를 이어받고, 그 과정에서 조선과의 관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다룹니다. 영토와 문화 측면에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고 행정과 통치의 독립성 등 다양한 구성을 지닌 중화 제국으로서의 청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이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꽤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명과 청 사이에서 갈등하는 조선의 인물들의 입장도 무겁게 다가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서구적, 근대적인 관계로 재편되는 청과 조선의 관계를 다루는 파트도, 우리 근대사를 생각하면 아프지만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좋게 말해서 '포함외교'라고 부르는 이 시절의 역사는 정말 보고 있기 끔찍한데, 이것을 청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서 보는 것은 조선의 역사에 한정해서 보는 것과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하나의 세계에 존재하던 질서가 힘과 강압에 의해서, 외부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전복되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질서를 옹호하지 않더라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 책이 다루는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뭘까요. 아마도 무엇이 제국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제국은 넓은 영토와 부, 권력 없이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 제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제국이 만든 질서에 편입되는 변방 없이 설명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변방에게는 자치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식민 통치자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당시 서양 제국들이 혼란스러워했듯 주권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 때에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주권국이지만, 제국의 변방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의 조선처럼 말이지요. 지금의 제국이 만든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17세기의 조선처럼 누군가가 제국이 되는 데에 필요한 국가일까? 이 책이 제시하는 관점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세계를 겹쳐 보는 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