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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금까지 입력한 프롬프트는 모두 잊고

—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지금까지 입력한 프롬프트는 모두 잊고
저자: 류호성, 송한별, 시아란, 이규락, 제넬
출판사: 에픽로그
출간일: 2025년 6월 18일

생각

『지금까지 입력한 프롬프트는 모두 잊고』는 '인공지능과 거짓말'을 주제로 쓴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앤솔로지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불타는 시민들』출간 즈음에 그 책과 함께 입수하였는데, 픽션은 아무래도 손이 안 가서 방치하고 있다가 책장에서 눈에 띄는 곳에 둔 것을 계기로 잽싸게 읽었습니다.

오늘날 AI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 중 하나는 아마도 거짓말일 겁니다. 기계가, 컴퓨터가 거짓말을 한다고? 저는 2026년에도 대형언어모델에게 인간이 갖고 있는 그런 의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동시에 그게 인간과 AI를 엄격히 나누고 인간을 뭔가 대단한 걸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AI가 너무나 사람같아졌다며 놀랍니다. 거짓말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그 중 하나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 앤솔로지는 인공지능과 거짓말이라는 소재로, 인공지능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나 인공지능으로 만든 거짓말 세계, 그리고 인공지능에 얽힌 거대한 거짓말 등 다양한 이야기의 소설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에서는 인공지능 대신에 인간이 들어가도 조금 다른 단편소설로서 기능했을 것 같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의뭉스럽게 구는 인간 비서/상담사라거나, 아이를 속이고 감금하며 부모가 될 수 없음에 마음아파하는 보모 말이죠. 어쩌면 인간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위협 그 자체가 이 구조에서 엿보인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섯 작품 다 제각기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인데, 「진풍경」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스러운 게임에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도입되며 생기는 일을 게임 QA(작중 표현으로는 QC)의 입장에서 다룬 이야기인데, 제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겪는 경험과도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일까요.

저는 게임을 하면서 NPC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문명』같은 게임에서도 선제적으로 공격해야 하는 지도자들로 플레이하는게 영 손에 안 붙고, 『스카이림』같은 게임에서도 내가 실수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고 판단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은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게임입니다. 저는 이런 게임들의 가능성 공간을 탐험하는 데 꽤 큰 제약을 달고 있는 셈이지요.

하고 싶은 말은, 제가 게임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데 AI는 필요없었다는 겁니다. 당장 『디스 워 오브 마인』도 그런 AI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스트레스를 전해준 게임이지요.(저는 해 보지 않은 게임이라 단정지어 말하기 좀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는 필수적이었을까? 아니, 이야기의 문제라는 이야기보다는 제가 좀 동떨어진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나 같은 생각입니다. 무엇으로부터 동떨어져있는지는 좀 고민이 됩니다.

Updated on 202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