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왜 읽을 수 없는가
저자: 지비원
출판사: 메멘토
출간일: 2021년 6월 25일
생각
『왜 읽을 수 없는가』는 책을 읽기 어려워했고 편집자로 일하며 언어를 민감하게 다룬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입문서와 신문의 칼럼 등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가 충분히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책입니다. 최근에 읽은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나, 읽기 목록에 넣어둔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의 번역자가 쓴 책이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에 관한 책이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비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이지만, 전문가스러운 사전지식을 요구하는 글입니다. 인문학의 입문서, 신문 컬럼 등 관련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을 것이 요구되는 책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잘 알려진 사실'을 기점으로 삼아 논지를 전개하는 글들을 인용하며, 이러한 글이 과연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글이 맞는지, 책과 신문이 경쟁력을 잃는 과정에 이러한 글쓰기의 책임은 없는지 묻습니다. 한국어로 책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 과연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글쓰기의 필요성과 존재가 인식되고 있기는 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그럭저럭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사상 입문』이나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처럼 입문서나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도 있고, 『안티 오이디푸스』나 『텍스트의 즐거움』처럼 세상에 많은 영향을 준 원본 텍스트에 가까운 책도 있고, 『어려운 책을 읽는 기술』처럼 책은 원래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어려운 책이야말로 가치있게 때문에) 독자가 잘 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이 책과 반대편에 놓여있는 것 같은 책도 있었지요.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책이 문제가 있다고 제시하는 예문들을 보며, 이 정도면 명료한 것 아닌가?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런 문장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거지요. 거기에 생각이 닿고, 이런 문장이 어째서 문제인지를 짚는 저자의 글을 보며, 사실 나도 이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일부분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제가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정도의 글을 쓸 능력도 글을 쓴 실적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쨌든 저는 그래도 하루에 500글자씩은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고(이 블로그를 말하는 겁니다!), 좀 더 정돈된 글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가 독자를 깊게 생각하고 글을 쓰냐고 하면 아니거든요. 그 점이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솔직히 아직 그걸 걱정하기에는 기초적인 글의 구성이나 써야 할 말과 쓰면 짐이 되는 말을 구별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만.
책은 저자가 일본에서 발견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구체적인 구절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한국어 글쓰기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가능성이 실현되는 방법이 있다면, 기존에 존재하는 저자와 글이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의 논리로 돌아가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방향성을 채택한 새로운 저자와 글이 나오고, 그것들이 기존의 방식을 (때로 파괴적으로) 대체해가며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저자가 글을 쓰고, 그렇게 만들어진 저작들이 때로는 운 없이 억울하게 묻히고, 어떤 것들은 성공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토양이 되지 않을까요. 저야 뭐 능력 부족입니다만, 가능하면 여기에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대넓얕』은 너무 제목부터 읽고 싶지 않은 걸요… 그래요. 나는 확실히 문제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