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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조작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단위조작
저자: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
역자: 안호성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
출간일: 2025년 11월 18일
원서명: Unit Operations: An Approach to Videogame Criticism
원서 출간일: 2006년

생각

『단위조작』은 게임과 관련해서 여러 저술을 남기고 활동한 이언 보고스트의 책입니다. 비평과 철학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위로서의 단위조작(unit operation)을 제안하고 그 작업을 다른 철학자들의 작업과 연결시키는 이 책은, 단위조작이라는 도구를 통해 비평을 해 나가는 근거와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단위조작은 결정론적이고 점진적인 체계보다 이산적이고 단절적인 행위를 우선시하는 의미 형성 양태(dp.23/542)라고 합니다. 단위조작과 마주서는 대상으로 체계조작을 들며, 생명과학이 유전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칸토어의 초한집합론, 바디우의 개념, 온톨로지와 사이버텍스트와 같은 것들을 예로 들며 무엇이 본인이 이야기하는 단위조작이며 이것을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안타깝게도 제 공부가 깊고 책을 진득하게 읽지 못해서 결국 책이 끝나는 지점까지 단위조작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모르겠는데, 저자가 구체적으로 든 예시들이 어떻게 위에서 말한 정의와 연결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터미널』을 예로 든 부분에서는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으면서도,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는 경험이 어떻게 결정론적이고 점진적인 체계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타워즈 갤럭시즈』를 설명하면서, "종합하자면 <스타워즈 갤럭시즈>의 칸티나 및 바자회 문화는 특히 하나의 현실 세계 지시대상, 즉 남부 캘리포니아에 대한 단위조작으로 간주할 수 있다."(dp.304/542)라고 결론내리는 파트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라프 코스터를 도착적으로 재미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며 그가 만든 게임은 정작 재미없다고 인용해서 비난했다는 건 알겠는데, 이게 어떻게 단위조작이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는 『ELDEN RING 밤의 통치자』에 대한 밈이 떠올랐는데, 이 밈 또한 단위조작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비평이겠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어로는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어린 시절'로 알려진 밈의 원문

시뮬레이션에 의한 논의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개념을 차용해 제안한 시뮬레이션 열병에 관한 부분을 읽어 보면 제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 개인적인 동기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잘 만들어진 게임의 다루지 않는 부분을 안타까워합니다. 이런 부분을 고치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 제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게임을 상상하는 근간에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게임 세계에는 화장실이 없지요.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나 NPC는 화장실에서 배변하거나 배뇨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생리적인 필요를 중시하는 생존과 관련된 게임에서도 드물지요. 엔터테인먼트 중에서 생존을 주 축으로 삼지만 만화에 속하는 『전희 서바이벌 사가』같은 곳에서는 꽤 중요하게 다루는데요.(물론 여긴 그걸 수치심-유머로 삼겠다는 음흉한 속내가 있지만)

하지만 그런 부분을 덧대는 일이 항상 게임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재미를 답습할 필요는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어쨌든 플레이어에게 의미있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이 (최소한) 오늘날 게임을 성립시키는 데 빼놓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오밀조밀하게 묘사된 『하늘의 궤적』의 민가에는 화장실이 없고, 『스카이림』의 드래곤본은 추위와 허기, 목마름을 신경써야 하는 생존 모드에서도 배변과 배뇨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건, 그저 그것들을 묘사하고 플레이어가 그것에 신경을 쓰게 하는 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시장경제적 결론 때문이겠지요. 『스카이림』에는 주인공이 배변을 하게 만드는 모드가 있긴 한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그 예시일 겁니다.

저자는 게임이 성립하는 조건으로서 재미에만 의존하는 것을 편향되어 있다고 보고, 라프 코스터가 재미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쓰려는 것을 위험하다고 봅니다. 동의할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로 팔립니다. 이 게임들이 재미 이외의 메시지를 줄 수는 있지만, 어떤 종류의 재미를 떠나 성립할 수 있는 게임은, 그런 게임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습니다. 재미를 떠나서 우리가 비평할 수 있는 게임은 어디에 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보헤미안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즈가 만드는 군사 시뮬레이터? 게이미피케이션의 결정체인 듀오링고? 『QWOP』같은 게임을 만들던 사람은 어느새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로 대중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장르를 연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리갈 던전』이나 『Another lost phone: Laura's Story』처럼 보통 게임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메세지를 던지는 게임도 있지만, 그것들이 '재미'를 포기한 게임은 아닙니다.

재미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하고 게임에 대한 이론이 얼마나 가능한지, 그것이 얼마나 현실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재미라는 걸 정의하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라프 코스터의 이론조차도 '학습'은 너무 좁은 범위의 재미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이 저작 이후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는 데 19년 정도가 걸린 걸 생각하면 최근의 논의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으며 기뻤던 순간이 있습니다. 다음 내용을 읽었을 때입니다.

이 인용문이 담긴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작품 ≪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를 읽은 한 영리한 독자는 온라인 책 리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지만 “자크 라캉을 통한 대중문화 이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제목은 적절할 것인데, 지젝은 자크 라캉의 이론을 설명하거나 심지어 개괄하기보다는 … 대중문화의 일부 산물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비판이 아니며, 나는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말하려 했을 따름이다. 당신은 여기서 라캉에 관한 설명이나 소개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일부 산물에 대한 라캉주의적 독해나 해석을 발견할 것이다.(dp.94/542)

기뻤던 이유는, 『HOW TO READ 라캉』에서 제가 지젝에 대해서 느꼈던 것을 온라인 책 리뷰와 그것을 굳이 인용한 저자의 선택으로 재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패턴 발견이고 학습이며 내가 라프 코스터 식으로 재미를 느낀 순간입니다. 제가 여기서 재미를 느꼈다는 사실을 저자에게도 알려드리고 싶네요.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이 책을 읽은 뒤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보이는 듯한데, 키워드는 아무래도 객채지향 존재론과 사변론적 실재론 같습니다. 지난 도서전 때 우연히 티머시 모턴의 『하이퍼객체』를 구입했는데, 좀 당겨서 읽어봐야 하게 생겼군요. 두껍던데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