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역자: 김태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2012년 3월 5일
원서명: Müdigkeitsgesellschaft(독일어)
원서 출간일: 2010년10월
생각
『모래의 여자』를 읽고 나서 와이프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을 보던 중, 눈에 들어와서 고르게 되었습니다. 책등에 한국어로 된 저자명 아래에 번역자 이름이 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책은 짧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해 보입니다. 규율과 금지, 외적의 존재로 대표되는 사회의 수명은 끝났고 높은 성과를 내고 성장하는 것을 근간으로 삼는 사회가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설명들은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 예를 들자면 규율사회의 정신적 질환인 히스테리는 규율 사회의 억압으로 인한 무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성과사회의 정신적 질환인 우울증은 규율에 의한 억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러한 분석이 꽤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단순하게는 저 자신이 이 책에서 묘사하는 듯한 후기근대적, 성과지상주의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고, 어떤 종류의 당사자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이나, 어떤 게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자신의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설명이 딱 맞아 떨어질 것이고,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읽어본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서는 이 책이 저같은 처지의 사람들에 대해서 제일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 책이 발표된 것은 2010년이고 올해는 2025년입니다만, 그 사이 있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지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15년의 샤를리 엡도 사건. 두 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한국에서는 "중국"을 적국으로 몰아붙이는 세력이 준동하고 있고, 이민자와 성 정체성에 대한 공격도 거세지고, '참교육'을 폭력으로 해석하는 콘텐츠가 유행하며 학생 인권 조례는 후퇴하고 있지요.
이 책에 의하면 몰락한 면역학의 패러다임이, 어떠한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면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이런 단어를 쓰는 건 건방진 일일 수 있지만, 자가면역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군요. 실제로 중국을 적국으로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반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 호명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런 의도는 분리 가능한 것일까요? 저와 같은 것을 봤을 저자와 역자는 이 책 이후에 일어난 현상들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은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