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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언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서울 선언
저자: 김시덕
출판사: 열린책들
출간일: 2018년 6월 10일

생각

『서울 선언』은 저자가 서울 곳곳을 걸으며 보고 들은 것, 조사하고 고민한 것을 엮어 낸 책입니다. 원래는 『한국 문명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서재에서 골라서 읽으려고 했는데 아뿔사, 해당 책이 시리즈 간행물의 4권이었고, 몰랐는데 1권도 샀던 걸 뒤늦게 발견해서 그 책부터 읽기로 하였습니다. 이 『서울 선언』이 바로 그 1권입니다.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며 조선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서울에 관한 여러 고정관념과 그러한 사고에 입각한 공공의 결정에 반론을 제시합니다. 사대문 안이 진정한 서울이라는 관념, 우리 역사 중 조선의 것, 그 중에서도 사대부의 것만이 보존하고 알릴 가치가 있다는 관념, 우리 역사의 오점은 일제 강점기이고 대한민국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관념 등. 단적으로 말해서 서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광주대단지사건을 이야기하니, 서울에 대한 어떤 재해석으로 구성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안의 여러 풍경을 보고 느끼는 것과 아쉬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책입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주로 주목받지 못하는 서민과 빈민의 삶에 시선을 주는 모습이 제 기억 속의 서울의 모자이크같은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이 꽤 저자 개인의 삶과 감정에 비중이 어느 정도 가 있는 책이니만큼, 저도 제 경험을 공유하는 게 이 책을 즐기는 방법으로 이상하지 않겠지요.

저는 어릴 때 강동구 천호동에 살았는데, 대충 중학생때부터는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사고 읽으며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광화문역에서 천호역까지 걸어서 귀가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 한켠에는 어떤 천막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단체명은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 기억과 섞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장애인의 이동권을 주장하는 벽보 등이 붙어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이었거나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광화문역의 풍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2년 기사를 찾았는데, 이미지도 다 풍화되어버렸군요. 대학 진학이나 이사 같은 이슈로 광화문역을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된 이후로는 볼 일이 없었지요.

그런데 십 년이 지난… 대충 2010년대 초반에도 그 문제로 사람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걸 뉴스로 알게 되었을 때는 뜨악했습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산다는 건 어떤 것일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한테는 그 뉴스와 광화문역의 광경을 잇는 경험이, 이 도시에 대해서 제가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화문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제가 박경석 대표와 같은 광장에 서는 일을 거치고 나서도, 그 때 투쟁하시던 분들에게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투쟁할 이유가 남아 있습니다. 제게는 부끄러운 일이지요. 저는 한국 이외의 도시에서 오래 살지 못해서 외국 도시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서울을 포함한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휠체어가 다니는 것을 잘 볼 수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사용하며 다니는 모습도 보기 어렵죠. 지방 도시들에서는 이젠 부정하는 게 무의미한 다민족국가화도 서울에서는 관측이 늦습니다. 가난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진화했습니다. 저자가 비판한 서울, 올림픽을 보러 올 외국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빈민들을 쫓아내는 도시에서 서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럴 효과를 낼 방법이 늘었을 따름이지요.

저자는 맺음말에서 마르크스의 말을 뒤집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단지 세계를 바꾸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기록하고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것이다.

뒤집힌 마르크스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제게 이 둘은 같은 말의 양면입니다. 공자의 말을 뒤틀어 말하자면, 옛 것을 공부하고 지금 시대의 과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허망한 일이고, 지금 시대의 과제를 고민한다면서 옛 일을 더듬지 않는 것은 위태로운 일일 것입니다. 어느 쪽도 서투르게 다룰 수 없지만, 시대에 따라서, 또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지금 시대에 부족한 일을 채워넣어야하는 것이겠지요.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는가? 모르겠습니다. 뭘 해도 만족스럽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언가는 해 보아야겠지요. 어쩌면 이 책의 2권과 3권을 읽기 위해서 구매하는 일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