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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저자: 리 매킨타이어(정준희 해제)
역자: 김재경
출판사: 두리반
출간일: 2024년 11월 8일
원서명: On Disinformation: How to Fight for Truth and Protect Democracy
원서 출간일: 2023년

생각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는 대안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리 매킨타이어의 2023년 저술입니다. 전작은 제가 사람들에게 영업하고 다니는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지요. 빌린 책을 다 읽는 것이 우선이긴 하지만, 데이트를 겸하여 독립서점에 갔는데 아무 것도 안 사고 나오긴 무엇해서 얇은 책을 찾던 도중 그래도 아는 이름이 나와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은 제가 읽지 않은 작가의 전작 『포스트트루스』와 좀 더 맥락적으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현대 미디어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씌우려는 현상의 간략한 역사와, 오늘날의 폐해, 그리고 거기에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언이 간결하게 다루어진 책입니다. 참고자료를 포함해서 200페이지를 살짝 넘는 책이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탈진실로 인해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한 지침서로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면 40페이지에 달하는 해제인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책의 저자가 아닌 사람이 책에 싣은 글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낸시 매클린, 세종서적)의 추천사를 보고 분개했던 기억을 들 수 있겠고, 고전이라 역사적으로 비판된 적이 있는 내용을 싣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한 해설서이론서의 해제마저도 이게 맞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읽곤 했습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분도 저자 리 매킨타이어의 진술이 명료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책의 범주를 꽤 넘어서는 느낌이 있어서 이럴 거면 본인의 저술을 한 권 내는 편이 낫지 않나?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을 위주로 서술하는 본서와 저자의 경향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차이를 보여주는 내용은 이 번역서를 원문에 충실하게 옮긴 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책에 한 걸음 다가서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해제라는 게 제가 상정했던 거랑 좀 다르다고 배우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제에 따르면(그리고 해제를 쓴 분에 따르면 저자의 일반론으로도) 탈진실의 핵심 및 부수적 특성은 자신의 신념과 합치하지 않는 진실을 거부하고, 또 신념에 합치하는 (비현실적) 현실을 새로 창안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내용을 읽으면 정말 끔찍하고 당장이라도 배제해야 하는 행위 같지만, 저는 이 요소만으로 탈진실을 정의하거나 저러한 특성을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요한 이유는 이러한 특성은 인류의 지적 활동에 불가피한 요소라는 것이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해제에서도 과학 부정이 역사 부정보다 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였듯, 어떤 요소들은 비교적 진실을 투명하게 규명할 수 있지만 어떤 요소들은 그럴 수 없지요. 극단적으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얼마만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 경선을 마치고 대선 후보가 될 사람에게 이례적으로 빠르게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하는 것이 정치개입인지 아닌지, TV 대선 토론회에서 성기에 젓가락을 꽂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런 것들은 결국 어떠한 식으로든 인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이런 것들은 '과학적 진리' 혹은 '명백히 확립된 사실'(p.169)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툼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당대의 일반 현실'(p.176)을 결정하는 과정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덜 주요한 이유는 우리는 이미 그렇게 구성된 현실들의 파편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생명 활동이 끝난다는 믿음과 어떤 구원자를 믿는 자는 죽어서 천국에 가리라는 믿음, 생명체는 죽어서 환생하는 고리에 빠져 있지만 깨달음을 얻은 자는 그 고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진실의 입장에서 공존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입장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때로 얼버무리고 때로 조율하며 공존하고 있지요. 이런 예는 이런 것보다는 훨씬 덜 거창하게, 우리의 삶에서 훨씬 다양하게 퍼져 있을 것입니다.

탈진실과 역정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는 본서와 해제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고, 해제를 쓴 정준희 교수의 의견이 좀 더 구체적이라고 느끼는 편입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과 거버넌스의 필요성, 그리고 이 대안조차 난해하고 흐릿하다는 인식까지도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고(해제),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밖으로 나가 할 일을 찾자(본서)는 결론은 둘 다 해야 하고, 희망적이고, 막막한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