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저자: 리 스핑크스(Lee Spinks)
역자: 윤동구
출판사: 앨피
출간일: 2009년 1월 20일
원서명: Friedrich Nietzsche
원서 출간일: 2003년
생각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앨피 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으로, 『문제적 텍스트 롤랑 바르트』와 같은 시리즈입니다. 와이프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라 출근할 때 골라서 들고 다니며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니체의 철학에 별로 동의할 수 없고, 오늘날에 교훈으로 삼을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니체가 도덕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한 내용과 방법론에는 꽤나 동의할 수 있습니다. 당시(와 오늘)의 도덕은 약자들이 강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노예 도덕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삶에 내재된 힘에 대한 의지를 긍정하며 약자의 도덕이 지배하기 전의 강자, 귀족적 문화를 미덕으로 소환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강한 자가 만들었던 규칙은 왜 약자의 규칙으로 대체당했을까요? 강한 자들의 힘이 약한 자들의 힘보다 약해지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지요. 니체의 말로는 약한 자들, 제 말로는 주권자들이 강자들을 뒤엎을 수 있는 봉기를 허용하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강자의 규칙이 끝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새롭게 역사에 등장한 강자들-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할 수 있던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예의 도덕을 내재화하고 강자의 세상을 규정하는 힘에 도덕을 도입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보는 계보입니다. 니체는 강자와 약자를, 주인과 노예를 이분화하면서 노예의 삶 속에 존재하는 주체성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힘을 추구하는 것'과 '억압받지 않으려는 것' 중에서 무엇이 주체적이고 무엇이 반응적인가? 라고 하면 저도 힘에 대한 의지를 주체적으로 꼽고, 인류의 발전 내지는 직면한 문제를 푸는 행위에 더 기여하는 자세로 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추구는 극단주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쓴 건 오늘날, 제가 아는 모든 역사와 최근의 사건들을 봤을 때의 시점이고, 니체가 보고 비판하려 했던 것은 조금 달랐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본 유럽의 역사와 세상에 대한 설명 능력과 규칙의 장악력을 잃어가는 당시의 기독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추구해야할지 모르고, 니체가 보기에는 헛된 가치를 찾아 헤메는 사람들. 그것에 대해서 답을 주기 위해 도달한 개념들이 힘에 대한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라고,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동의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요.
하지만 힘에 대한 의지의 힘이 약자를 향한 폭력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 '대안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발호하는 오늘날 힘에 대한 의지를 긍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니체는 개인됨과 귀족됨, 인간의 보편적 삶과 가치의 범주를 넘어선 삶에 대한 탐구의 실례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을 긍정하거나, 의도는 좋았다고 평가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삶의 목적"을 한 가지 힘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극단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내는 일입니다. 영원히 반복되고 무한한, 끝이 없는 삶을 가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무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말년에 미쳐버렸습니다. 니체가 비판하려고 한 것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구성. 도덕과 가치의 파멸.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들이 적확했는가 하면, 글쎄요. 저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은 마지막에 니체가 영향을 준 이후의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데리다에게 준 영향도 이해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러 사고방식의 근간을 니체가 닦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요약본만 읽고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것보다는 좀 더 니체 본인의 생각을 깊게 파악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당분간은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