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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도둑의 도시 가이드
저자: 제프 마노(Geoff Manaugh)
역자: 김주양
출판사: 열림원
출간일: 2018년 6월 20일
원서명: A Burglar's Guide to the City
원서 출간일: 2016년

생각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장기대여한 39권의 책 중, 『궁극의 문자를 찾아서』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책입니다. 도시 설계와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범죄자의 입장에서 다룬 책이라고 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다소의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그런데 도둑, 혹은 침입절도자(burglar)들은 설계자들이 상정하지 않고, 이용자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물을 이용한다는 것이죠.

맺는말에 가까운 성격인 마지막 장까지 총 일곱 장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일화를 소개하는 구성으로, LA를 헬리콥터로 순찰하는 대원, 자물쇠 풀기 스포츠 관련자, 유명한 도둑을 검거한 경찰, 심지어는 게임 『시프』를 만든 디렉터나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의 최동훈까지 인터뷰하거나 업무에 동행하며(최동훈의 인터뷰는 책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진행 상태를 개조해서 플레이하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행동들과의 유사성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행상태나 게임 데이터를 개조하는 것은 대개 이 게임의 개발자가 의도를 가지고 어떤 경험을 주려고 했지만 도무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보이는 게임 디자인에 항의하는 성격에(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행동을 너무 많은 회수 반복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게임에 있습니다) 가깝습니다만, 아무튼 목적 면에서는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건 백화점에 들어가서 1층부터 8층까지 아무것도 안 보고 9층까지 순간이동해서 푸드코트에서 밥만 사 먹고 건물 밖으로 순간이동하는 행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다소 성향이 다르지요.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 핵을 쓰는 행위는 좀 더 명확하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좀 더 침입절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음, 그런 기준으로 비교를 해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바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을 무력화하는 것도 생각이 나고, (무허가로) 마천루의 벽면을 오르거나 파쿠르를 하는 사람들 생각도 나고, 게임 『와치 독스』 생각도 나고요. 프로그래밍 쪽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패턴 랭귀지: 도시, 건축, 시공』 생각도 나고요. 이 책은 다른 도서관에 있어서 빌리자면 빌릴 수는 있겠는데, 두께를 생각하면 완독하기 위해 빌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반체제적이고 저항적인 건축/건축 오용(책의 표현을 빌림)을 다룬 책이 더 있으면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