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영속패전론
저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聡)
역자: 정선태, 김란경, 김민지, 김지혜, 김해슬, 박우현, 이서현
발행처: 이숲
출간일: 2017년 7월 31일
원서명: 永続敗戦論 戦後日本の核心(일본어)
원서 출간일: 2015년 6월 12일
생각
와이프의 추천으로 손에 잡게 되었다. 현대 일본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담은 서적은 앞뒤없이 읽는 편이다.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우노 츠네히로, 워크라이프)을 비롯해, 서브컬처와 관련되어 유명한 책 몇 권.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아즈마 히로키, 문학동네)이나 『문단 아이돌론』(사이토 미나코, 한겨레출판사). 정치 쪽으로는 『일본회의의 정체』(아오키 오사무, 율리시즈) 정도. 그런 의미에서 『영속패전론』은 꽤 “○○의 관점에서 본 □□”이나 “□□의 일각인 ○○”보다 좀 더 “□□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설명하려는 책 같다.
책의 내용은 꽤 직관적이다. 일본의 오늘날의 체제는 1945년의 패전으로 구성된 체제로부터 이어 내려왔지만, 주요 정치 세력과 대다수 국민은 그 체제로부터 보는 이익을 향유하는 동시에 패전의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으며 그 부작용이 오늘날의 일본 사회의 근간에, 일본 사회가 맞이하는 여러 문제의 근간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웃 나라로서 접하게 되는 일본이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설명이 되는 책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결국은 이런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서 살지도 않는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가?” 오타쿠라서 서브컬처와 관련된 학술적 논의가 있으면 맛이라도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을 얼마나 읽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고 하면 이 쪽이 먼저 아니냐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는 게 『대중문화의 겉과 속』(강준만, 인물과사상사) 정도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책, 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기가 너무 싫은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역자 후기에서는, 일본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영속패전론’이라면 대한민국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은 ‘영속식민지론’ 아닐까 하는 고찰을 제안하고 있다. 솔깃한 제안이다. 나 자신이 이 책을 계속 읽으며 한국에도 꽤 적용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회의 논의가 아무리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고 해도, 통째로 집어삼킬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까지 오면 문득 드는 생각은, 안이하게도 한국에 대해서 이렇게 영향력 있게 분석되고 회자되는 내용이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내가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거고, 알아도 아마 찾아 읽을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러운 것을 직시하기 싫으니까.
성인이 되고 투표권을 행사하고, 자잘하게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보낸 지 몇 년. 사회가 가는 방향을 지켜보며 나 자신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더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하지만 딱히 있는 시도부터 주워먹어보자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한심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