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유지권
저작권법에서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인격권의 일종으로, 자신의 저작물이 본래의 모습대로 활용되도록 할 권리이다.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이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권리'라면, 이쪽은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을 내가 만들지 않았다고 할 권리'라고 할 수 있겠다.
무한책임과 유한책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이런 단어를 원래 맥락에서 뽑아내서 좀 더 일반적인 경우를 할 때 쓰곤 하는데, 특정한 사람이 쓰지 않은 책을 특정한 사람이 쓴 것처럼 서지정보가 등록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담아 이 개념을 꺼내온다.
어떤 유명인이 쓴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누군가가 쓴 책을, 저자의 이름에 유명인을 달고, 심지어 '역자'명을 익명이라고 적어내고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 몇달간 올라가있는 책이 있다. 난 이 기획이 싫다. 저자의 이름을 제멋대로 적어놓은 걸 떠나, 이 책을 만든 사람의 존재마저 숨겨놨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저자명에 유명한 이름을 적어놓고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세종대왕… 쇼펜하우어가 저자로 표기된 책은 워낙 많아서 뭐가 진짜 쇼펜하우어가 쓴 글을 번역한 거고 뭐가 해설서인지도 모르겠다.
'번역서'라는 게 꽤나 번역하는 사람의 창작이 들어가는 물건일 수도 있다. 전집 같은 것도 있으니까 책의 기획에 저자가 관여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잘 해봐야 인용하고 주석을 단 책의 저자로 인용된 사람의 이름을 박아넣는 건 무슨 경우인가? 지젝의 책을 읽어놓고 라캉의 책을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니체의 입문서, 해설서를 읽었다면 그건 누군가가 니체에 대해서 쓴 글을 읽은거지 니체의 글을 읽은 것이 아니다. 책을 만든다는 사람이 독자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범죄다.
책을 팔아야 할 수는 있다. 위대한 옛사람의 권위에 기대야 할 수는 있다. 나는 내가 이런 행동을 변호하는 논리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게 화가 난다. 책 제목조차 검색 키워드 모음이 되는 것도 봐 왔다. 경쟁은 격렬해지고, 사람들은 당장 자신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만 결국 모두를 망가뜨리는 일을 하나하나 해 나간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상관없지만,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을 때 그 의도를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다. 기자가 원래 기사를 쓰려는 방향성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방향성에 맞는 증언이지, 내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발언이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괜찮다. 문제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내가 말한(그렇게 유도된) 내용 중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 선택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한 말은 그저 그들이 무언가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재료일 뿐이며,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가 갖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며, 거기에는 내 얼굴과 내가 한 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인터뷰하겠다고 동의했으므로, 그들에게는 면책권이 있다. 인터뷰하겠다고 동의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동일성유지권을 포기하는 행위다. 그에 걸맞은 이득이 있지 않은 한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웃기는 일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방송 인터뷰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계엄 건이었다.)
인터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