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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마케팅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무언가를 파는 일은, 전자를 잘 하는 것이 후자를 잘 하는 것과 크게 상관없다는 점에서 매우 다른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는 무언가를 잘 만드는 사람이 무언가를 잘 파는 사람이라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무언가는 잘 팔린다는 믿음이 현실에서는 배신당하는 일이 충분히 많다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소비될 제품 하나하나를 만드는 일에도 적용되지만, 대량생산될 제품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메타-만드는 일에도 적용된다. 전자같은 것은 이제 길에 음식점을 내고 음식을 파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고, 후자같은 것들은 제품 기획이라는 범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영화 촬영은 둘 중 무엇에 속하나?" 같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개념적으로 엄격히 분리하는 것보다 개별 상황의 차이에 따라 다른 방법론을 채택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일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팔기 위한 일이다. 『린 스타트업』 같은 책이 강조하는 것이 이런 사고방식이고, 무언가를 팔아서 재무적인 생존을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염두에 둔 행동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결국 일로는 팔기 위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계속 이런 사고방식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일 이전에 무언가를 만드는 건 기본적으로 내가 누리고 싶은데 세상에 그게 없거나 일시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게임을 만든다. 거꾸로 읽을 게 많이 있다면 굳이 쓰지 않는다. 남들이 만든 재미있는 게임으로 충분하면 굳이 만들지 않는다. 이러니 팔기 위해서 쓰고 만드는 사람보다 좀 덜 절실할 수는 있다.

누군가는 "취미로 글을 쓴다는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 앞에서 글 쓴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아느냐" 비슷하게 말하던데, 그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들어서 팔지 않아본 사람은 파는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다.(이런 자세는 실제로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인지하는 사람들, 특히 팀원들에게 큰 고통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파는 고민 없이도 충분히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 고민은 유의미해질 수 있다.

뭐 경험적으로는 팔기 위해서 고민해보는 게 만드는 법 자체를 고민하는 좋은 경로인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