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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읽고 쓰기의 경제

내가 창고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는 행위는 상자가 창고 바닥에 놓이는 행위와 꽤 대칭이다. 이런 경우 창고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는 행위가 학문이 될 여지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내가 창고 바닥에 상자를 언제, 어떻게, 어떤 상자를 내려놓느냐에 따라 상자가 여러 개 놓일 수도 있고, 상자가 사라질 수도 있고, 상자를 놓는 것이 거부될 수도 있다면 상자를 잘 내려놓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학문이 생길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여러 층위에서 대칭이 되는 행위다. 하지만 사기와 팔기가 그런 것처럼, 그 행위가 일어나는 현실의 많은 부분은 대칭이 아니다. 바로 이 부분 대칭인 행위의 흥미로움이 어떠한 학문이 발생할 여지를 낳는다. 그래서 누가 그랬던 것처럼(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읽고 쓰는 행위를 경제학적으로- 마케팅이나 뭐 그런 쪽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 거래의 측면에서 보려고 한다.

쓰인 것은 읽혀야 한다

쓴 결과물은 읽는 행위에 도달했을 때 가치가 생긴다. 쓰기의 우수한 점은 읽는 행위와 시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제도 용이하며, 보관의 용이함도 꽤 높다. 하나의 쓰기가 정말 넓게, 정말 오래 읽히는 것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쓰였지만 읽히지 않는 것

전자책 서점의 신간 목록을 보면, 읽히지 않을 책들이 많이 보인다. 몇 부 팔리지 않을 책을 그래도 필요하기 때문에 낸다는 정도의, 대중성의 문제가 아니다: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한 글은 많이 있다. 이 블로그에 내가 올리는 글처럼, 읽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쓰는 것에 방점이 찍힌 글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시장에 적응한 사람들은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다면 팔리는 책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이 담긴 책이 아니라. 이건 당연히 책과 글만의 일이 아니다: 영화는 물론이고, 게임조차도 그러하며, 심지어 요식업마저도, 팔리기 위해서는 팔 것을 만드는 노력 이외에, 팔리는 것 자체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사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알 수 있다. 사려는 타이밍에 눈에 들어오거나 그렇지 않은 것들 중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결국 수요자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급하는 측에서는 수요자의 눈에 들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습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글을 쓰는 노력이 아니라, 내가 붙잡고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노력. 많은 방법론이 전자의 노력을 하라고 하지만, 나는 싫다. 까짓 거 성공 좀 못 하고 말지. 그리고 결국 전자를 하기 위해서도 후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기도 하고.

읽어야 쓸 수 있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언어를 학습할 때 단어를 들어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대해 보고 들은 것 없이 세상에 대한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처럼.

읽지 않고 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고 쓰는 글도 세상에는 있을 법하다. 쓰인 결과물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비해서 쓰는 과정에 들어간 읽힘이 모자란 것이다. 논어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있다. 내게 학學은 기존의 사례를 익히고, 역사를 정리해 내 안에 쌓는 것이다. 그리고 사思는 정리한 것을 기반으로 체계를 만들며, 어떤 일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망罔한 것도 문제고 태殆한 것도 문제지만, 무언가를 만들기 쉬운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성공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세상에서는 태殆한 것이 좀 더 눈에 잘 보인다. (거꾸로, 내가 하는 행동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망罔한 방향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경제

이 블로그를 쓰기 시작할 때의 결심을 생각해보면, 이런 읽고 쓰기의 경제에 있어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세상에 읽을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내 글도 읽혔으면 좋겠다.
  2.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그걸 적극적으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다른 일이다: 예를 들면 출판기획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거나. 그 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일과 섞고 싶지는 않다.
  3.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책으로 한정짓지 않아도 된다. 게임, 영화, 다른 세상 공부.
  4. 하지만 읽은 것들이 내 안에서 연결되어야 하고, 그 연결이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있었으면 좋겠다. 그래프 뷰는 그것을 시각화하는 한 가지 시도이고, 조각의 게시물들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

나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세상에 돌려줄 능력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다. 쓰는 것은 그 방법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접근이다.

글의 경제

누군가가 글을 쓰고 그것을 누가 글의 시장에 내놓으면 아직 읽히지 않은 글이 하나 생긴다.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생긴 변화들의 합이 그 글을 쓰는 데 들인 공만큼 생기기 전까지는, 그 글의 효용은 쓰기와 읽기의 경제학에서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말해서, 읽히지 않을 글을 쓰는 건 낭비다. (글쓰기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효익은 무시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미 세상은 창작하기 너무 쉽다. 쓰기는 과잉이고, 읽기는 희소하다. 어디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조차 책을 쓰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본 것도 같은데,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인용할 수 있게 출처를 알려주실 분은 연락해 주십시오….

어쨌든 나도 글을 쓰고 있고,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만큼 나도 쓸 능력이 출중하지 못해서 이 '쓰기 공해'에 가담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만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잘 쓰게 되겠어요? 글은 계속 쓸 거고 '쓰기 감축'은 못 하겠는데, '읽고 쓰기 중립'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으로 가능한 한 많이 읽어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