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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로마자 표기를 영어라고 생각하지 말기

중국의 成都 시는 Chengdu 시는 쳉두라고 표기하기 쉽지만, 청두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냥 발음이 쳉두보다 청두에 가깝고, 중국어의 병음(Pinyin) 체계에서 e가 대충 '-ㅓ'에 가깝게 쓰인다는 걸 알면 헷갈릴 일이 없다. 최근에 『사천미식』을 읽다가 떠올리게 되었다. 나름 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2년 공부했는데 거의 까먹고 쳉두라고 쓸 뻔 했다….

베트남의 Nha Trang 시도 나트랑이 아니라 냐짱이라고 했으면 한다. nh, tr 둘 다 베트남어에서 n + h, t + r이 아니다. 이 쪽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베트남, 한자 속의 베트남』을 계기로 좀 찾아보게 되었다.

이 블로그에는 싣지 않았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몽족 가족이 병원에서 겪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대한 책인 『리아의 나라』를 읽으면 몽어의 로마자 표기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구절이 있다. 몽족, 몽어의 표기는 대개 Hmong으로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외국인들이 비교적 비슷하게 발음하기 위한 기준으로, 몽어의 로마자 표기에 따르면 Hmoob이다. 모든 음절이 모음으로 끝나는 몽어의 특성상, 마지막에 자음을 넣어서 성조를 표기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ᅟoo는 비음화된 ɔ 발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txiv neeb은 발음하면 '치 넹'이라고 한다.

이처럼 각국의 언어를 로마자 알파벳을 빌어서 표기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요구가 있었기도 했고, 컴퓨터를 써야 하는 현대에서는 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각 언어는 다른 잘 나가는 언어, 그러니까 영어, 어쩌면 프랑스어 화자가 발음하기 쉽게 표기법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표기법을 골랐다. 나는 이걸 존중하고 싶다.

거꾸로 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내 이름은 로마자 표기로 Jeong Jinmyeong이고,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저걸 읽고 내 이름을 잘 발음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보자마자 읽게 만든다" 같은 건 없다. Chung Jinmyoung이라고 하면 보자마자 읽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영어 화자만 고려한 이야기일 게 뻔하지 않나.

로마자 표기가 사실상 영어로, 사실상 글로벌한 표기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자 표기가 고려하는 제1사용자는 그 언어의 사용자이지, 외국어 사용자일 수 없다. '외국어'라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르는 언어의 로마자 표기를 읽을 때 현실적으로 영어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가능한 만큼 더 정확히 통하는 시대를 만들고 싶다. 영어 화자들도 대충 Jung을 융이라고 읽는다. 다수의 영어 화자들이, 나아가 한국어를 모르는 다수의 외국인들이 Jeong을 정이라고 읽게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