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버그
게임의 버그는 플레이어를 화나게 하는 것이지만, 사실 내가 게임개발이라는 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중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버그는 재미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임을 만드는데 뭔가 리깅이나 애니메이션 절차에서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움직일 때 팔다리가 멈춰 있는 상태로 움직인다거나 괴상하게 뒤틀린 상태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모습과 다르고, 그래서 재미있다. 우리가 게이머로서 보게 되는 버그는 극히 일부분이고, 개발 과정에서는 정말 갖가지 모습으로 뒤틀린 세상을 볼 수 있다. 내가 버그가 많이 있는 게임을 비난한다면, 그건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만든 것에 대해 화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건 개발자들끼리 즐겨야지 그 즐거움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켜서 직업의 가치를 낮추는 것 아니냐 하는 직업이기주의적인 발상의 발로이기도 하다.
어떤 버그는 재미 말고, 미적 만족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타일을 놓을 수 있는 격자가 있고, 타일의 중앙과 각 다각형 변마다 색이 있고, 타일을 맞는 모양의 격자 칸에 맞춰 넣으면 그 변과 인접한 비어있는 격자 칸에 같은 색이 표시되어야 한다. 단순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거다.

그런데 이걸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모양을 볼 수도 있다.



타일과 인접하지 않은 곳에 띠가 나타나고 있다. 또 오각형은 대체 왜 돌아가 있는가?
어쩌다 이런 모양이 되었나? 이 스크린샷들이야 원인을 추적할 수 있어 보이지만, 이 상태로 만드는 것도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이 모양들을 보면 이 모양 자체가 좀 예쁘지 않나?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자연스러운(canonical)" 모양에 비해서 어떠한 혼란스러워 보임이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만든 버그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종류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랑 비슷한 것을 만들 가능성?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 형태는 쉽게 발견되기 어렵다. 우연한 헤멤이 만들어낸 세상에 없던 광경. 내게는 그것이 표현된 버그의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함이다.
Matt Might의 The illustrated guide to a Ph.D.는 직관적으로 박사학위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동기를 부여하는 도식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인류의 지식의 한계를 넓히는 일은 아니다. 버그로 인해 발견되는 것들이 무엇가 대단한 표현일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광경들은 내 세계를 넓혀주며, 마땅히 그래야 할 것과 우리가 가진 것의 차이를 조명하며, 어떠한 조건들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부서지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이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치해석을 전공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pic.twitter.com/5QSVnbtW
— 발디엘 (@BaalDL) November 12, 2012
그러니까 계속 밀어내라고.(Keep pu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