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것들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빠질 것이다
시장경제 하에서의 경쟁은 강력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힘이 있다.
문제 중 하나는 독점과 과점, 혹은 불문율적 관행이다. 시장의 일부 플레이어가 생산과 판매의 어떤 과정에서 다른 선택지를 실질적으로 없앨 수 있다면, 전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어렵다.
다른 문제는,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만드는 입장에서, 만든 것을 사야 하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파는 일은 만드는 일에 종속된 일이 아니라 독립되고 전문적인 분야이며,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관점에서는 만드는 일을 지배하는 일이기까지 하다.
그 결과 파는 일의 어느 단계에 이익이 집중되기 쉽다. 수가 적은 중간도매상, 혹은 '플랫폼'. 이런 상황에서 경쟁의 힘은 약해진다.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심지어 파는 일의 다른 단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득을 쥐어짜이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노동이라고 다를까? 어떤 노동은 다른 일을 찾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혹은 그 일이 너무 좋아서 공짜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 아니면 싫더라도 그 처지를 감내하지 않으면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가 받을 수 있는 임금과 처우는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 더 나아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깎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무언가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빠진다는 것은, 명백히 나빠지졌거나 더 좋아질 수 있어보이는 대우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 없이 그것을 계속 써야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시장경제의 덕을 보고 있지만, 이것은 엄연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나쁜 것들이 삶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 이익이다. 그리고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거래가 살아있을 때를 가리키는 수사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납득할 수준/더 이상 쓰지 않을 수준이라는 것은 미시경제학의 Willingness-to-Pay 곡선이 가리키는 것처럼 다양할 것이다. 무엇을 사지 않고, 사지 못하고의 문제는 여전히 '안 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은 어떠한가. 임금과 노동 환경의 하한선이 그래도 괜찮을까? 농업은 또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