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거대한 퇴보 - 인도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저자: 라훌 바티아(Rahul Bhatia)
역자: 양진성
출판사: 글항아리
출간일: 2025년 7월 4일
원서명: The New India: The Unmaking of the World’s Largest Democracy
원서 출간일: 2024년 12월
생각
『거대한 퇴보』는 오늘날 인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혐오와 폭력, 제도적 배제와 그를 뒷받침하는 힌두 민족주의, 그리고 통제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신원확인제도를 비판적으로 다룬 르포입니다. 여러 입장의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무엇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 설명합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건 어떻게 말하자면 우연입니다. 제가 들어가 있는 채팅방에는 인도와 관련된 소식이나 밈을 가져오는 지인이 있는데, 그가 8월 15일(인도에서도 독립기념일입니다) 근처에 "인도 (서브)레딧이 독립기념일을 기념하여 이슬람교도와의 평화를 주장한 배신자를 비난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아래 이미지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제가 현대의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영국의 지배와 마하트마 간디, 간디는 동포인 인도인에게 암살당했다는 것, 그리고 독립 이후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분리된 것 정도입니다. 살면서 간간히 인도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지만, 그저 '해외 토픽'일 뿐이었죠. 그 와중에 레딧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볼 때까지만 해도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나고 있나 보다, 정도의 생각만 있었죠.
그러다 언제나처럼 리디북스에서 신간 전권 훑기를 하던 도중 이 책을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이 위 소식과 관련된 내용 아닐까? 하여 흥미를 가지게 된 저는 이 책을 위시리스트에 넣게 됩니다. 이 책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인도의 상황이 제가 알고 싶은 것의 목록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제 주변에서 일어난 어떤 우연에 의미 부여를 했고, 그로 인해 가볍게 집어본 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이 책이 보여주는 상황을 심각하게 느꼈고, 이 책의 다루는 일이 남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인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일들은 우리가 한국의 뉴스에서 보는 일, 미국의 뉴스에서 보는 일, 일본의 뉴스에서 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는 완전히 붕괴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제도에 정의를 요구하러 갔습니다.” 그녀는 델리 교통경찰 본부 앞에서 시위하며 “델리 경찰을 규탄한다!”라고 외쳤다가, 다시 “델리 경찰, 우리 편에 서라!”라고 소리쳤다. “웃기고 유감스러운 일이죠. 바로 그 경찰한테 두들겨 맞고 있으니까요. 그 경찰은 우리를 싫어하죠.”(1장 4. 모두가 의심받는 세상, 79/1123)
시위가 시작된 지 3개월쯤 되던 2020년 3월, 전염병처럼 번져가던 증오가 새로 찾은 숙주는 코로나19였다. 뉴스 채널들은 델리에서 있던 합법적인 무슬림 집회를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보건부의 고위 관계자는 매일 생방송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집회와 관련 확진자 수, 무슬림에게 책임 있는 확진자의 비율을 발표했다.(1장 5. 자유의 외침, 102/1123)
그들의 선동은 선거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고, 그런 말을 하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자, 사회적 용인이 가능한 행동의 범위는 더 확장되었다.(1장 6. 그들만의 힘으로, 126/1123)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는 문제의 공통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다른 시민을 배제하려 하는 시민들이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RSS가 무슬림을 배제하려 하는 것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에서 전라도와 이주민을, 미국의 백인 이외의 모든 인종을, 일본에서 한국계와 중국계를, 심지어 쿠르드인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구성원의 자발적 지지가 나타났던 사례를 들면 중국이 노동계급의 적을, 독일이 하등 인종을, 그 어느 끝에는 이탈리아가 정당한 로마의 강역을 침탈한 외세를 배제하려 한 사태까지도 올라갈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다루는 일은 우리 사회가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는 일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가 겪는 문제에 무관심하더라도, 민주 시민이 겪는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이 책의 마지막은 경찰과 사법 절차의 여러 방해를 뚫고, 제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을 굳게 밀고 나가는 청년이 고향에 돌아가보니 친했던 친구가 집권당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말, 편집 선택권을 의심받는 언론이 전하는 말들을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의 이토록 깊은 신념을 누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3장 2. 부모와 아이들, 556/1123)
고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