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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신화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능력주의라는 신화
저자: 콰메 앤서니 애피아(Kwame Anthony Appiah)
역자: 김혜연
출판사: 전기가오리
출간일: 2020년 2월 20일
원문: The myth of meritocracy: Who really gets what they deserve?: Sorting people by 'merit' will do nothing to fix inequality
원문 발표일: 2018년 10월 19일

생각

『능력주의라는 신화』는 가디언지에 실린 기사를 번역하여 짧은 책으로 만든 출판물입니다. Meritocracy, 그러니까 한국어로는 능력주의나 성과주의로 번역되는 단어를 만들고 그것이 가리키는 시각을 비판한 마이클 영의 삶과 그 이론에 대해 쓴 글입니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비판은 1958년에 출간된 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그것이 가리키는 발상도, 문제점의 예상 혹은 징조도, 대안에 대한 모색도 이미 70년쯤 전에 이미 나왔다는 것이지요. 단어 자체도 이 책이 명시적으로 쓰듯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성과주의는 꽤 긍정적으로, 혹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것에 높은 보상을 주는 것은 일견 공리주의만큼은 타당해 보이고, 시장에서 좋은 상품이 선택되어 많이 팔리는 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가 주장하듯 그 구조를 사회 전반적에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사회의 번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능력주의는 공리주의만큼이나 비판받을 지점도 많지요. 그것이 정말 공정한가와 같은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책이 지적하는 것처럼 능력주의가 계급주의로 미끄러져 안착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가족을 부정하고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부정할 게 아니라면, 이 미끄러짐 또한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계급화가 진행될수록, 능력이 다시 정의되겠지요.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능력'이라고 진심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고, '비숙련노동'이라는 용어로 잘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마땅히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하나의 균일한 생각이 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은 능력과 성과로 평가하겠지요.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부모를 잘 만난 것이 성공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꽤 많은 부분이 운에 의존하겠지요. 어떤 부분은, 글쎄요. 그 의사결정을 맡은 사람의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그래도 바람직하다고 말할 상태가 있다면, 그 모든 평가 기준들이 꾸준히 교란되고 변화하는 상태가,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다양한 분야 중 무엇을 택할지를 스스로 고르며, 선택한 분야의 평가 기준을 그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줄다리기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영이 다원적 가치(plural values)라는 말로, 사람의 여러 측면을 부각하고 구성원을 한 방향으로 줄세우지 않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웠다면, 저는 삶의 여러 측면과 다양한 분야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에 다원적 가치라는 단어를 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