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집회를 보면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적습니다. 2025년의 시위 문화라 적을까 하다가, 계기가 된 사건을 박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2024년 12월 3일이라 적습니다.
저는 박근혜 탄핵 이후로는 광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로서는 일일이 셀 수도 없는 노동쟁의,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집회, 전장연의 선전전… 많은 이슈들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저는 여기 적은 일과 그렇지 못한 각종 이슈들에 철저히 아무 것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광장에 나와서, 깃발을 들 수 있을 때는 기수들 사이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게 된 것이 오늘 쓰게 되는 내용입니다.
개인이 깃발을 들고 나오는 것 자체는, 제 기억으로는 박근혜 탄핵 집회에서 처음 유의미하게 관측되었습니다. 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의) 배후 세력"을 색출해야 한다는 반응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와 있는 것을 의사 표명하기 위해서 깃발을 들었다고 하지요. 그 때 광장에 나갔던 시민들이라면 그 때의 "이 집회는 동원되지 않았고(순수하며), 폭력성을 띄지 않을 것임"이라는 공감대는 어떤 방식으로든 느끼고 있으셨을 겁니다. 그런 비폭력을 전제하는 집회의 한계를 비판하는 말을 듣는 것으로든, 아이들과 유모차와 함께 나오던 시민들을 보는 걸 통해서든 말이지요.
2024년 12월 3일 이후 늘어난 깃발 중에는 그 때 주류였던 "아무말"과 "패러디"를 넘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들고 나오는 데 거리낌없어진 모습이 눈에 띈다고 생각합니다. 패러디라고 해도 대중적인 아이템(민주묘총, 햄네스티 등)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는 작품을 내세운 깃발이 많이 보이지요(우마무스메 전용도로추진위원회, 천우맹, 정대만…). 기존 다른 집회에 나오시던 분들 입장에서 봤을 때… 얌전히 말하자면 "저 깃발은 뭐지?" 싶은 깃발들이 더 많아졌고, 밈적으로 말하자면 "그뭔씹"스러움이 더 강해졌다고 할 수도 있겠죠. (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정체성에 대한 표현도 더 광장에서 자주 보이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흥미로웠던 건 이걸 넘어, (깃발을 드신 분만 그런 건 아니지만) 기수분들이 서로 인사하는 과정에서 자기 깃발과 관련된 굿즈를 서로 나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잘 몰랐는데 둘러보니 자기 깃대를 이런저런 "집회 굿즈"로 장식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집회에 자주 참여하는 단체등에서 뿌리는 스티커 같은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이해가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단체의 노출을 늘리고 이슈를 홍보하는 수단이니까요. 그런데 개인 기수분들도 그런 스티커를 만든다는 것은 꽤나 생경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떠올린 것은 동인(창작)계의 문화였습니다. 판매전, 온리전 같은 행사 등에서 서로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나누던 모습과 닮아 있는 건가? 같은 생각이죠. 부스를 내는 지인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작품이 있으면 작품을 공유하고, 그게 아니라면 간단한 간식이라도 드리고 오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집회 현장에서 지인을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게 특출난 일은 아니지요(집회 현장에서는 그런 주변음을 정말 많이 듣죠). 하지만 이 기수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좀 더, 동인 창작자들이 모인 공간 특유의 문화가 이 현장에 맞게 재현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개인 기수라는 것은, 모순적인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집회 현장에서 기수는 본인이 속한 집단을 대표하기 위해서 깃발을 드는 것이고, 어떤 단체를 대표할 생각이 없는 개인이 굳이 깃발을 들 필요는 없습니다(없었습니다, 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집회에 나온 개인 기수는, 본인 한 명이 안 나온다고 결과가 크게 차이나지도 않을 집회에, 굳이 단체에 속하지도 않은 채, 단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동인 창작자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소비만 할 때 제일 편합니다. 동인에서 논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만 소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마이너라서 어쩔 수 없이 자급자족한다"고 자조성으로 말하며 창작하는 것처럼… 창작 자체가 어떤 면에서 좋은 행위일 수는 있어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커뮤니티에 (작가로서) 노출되는 것이 항상 즐거운 일이 아님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기도 합니다.
위에서 개인 기수와 동인 창작자를 비교했지만, 이들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제가 확신이 모자란 성격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본인 한 명이 안 나온다고 결과가 크게 차이나지도 않을 집회'에 나오는 데에 동인 문화가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그것에는 매우 감사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주말에 동인 행사에 가는 경험이 주말에 광장으로 나오는 시민의 경험으로 이어진다면 저는 그걸 긍정하고 싶습니다.
아이돌 팬 문화에는 부당한 운영에 단체로 항의하고, 현장에 나온 서로를 돕고, 추운 새벽에 대기하는 경험이 있어서 그것이 광장의 경험으로―'응원봉'으로―이어졌다는 말은 '웃기지만 슬픈' 말이겠지요. 이 글은 여기 언급된 서브컬처를 나는 이런 이유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하고 싶은 글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연관성을 느꼈고 여러분이 느끼기에는 어떤지를 묻는 글입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자면, 동료 시민 여러분들이 자신들이 원래 살던 대로 살던 경험을 잘 살리거나 살리지 않은 채 광장의 시민이 되기로 결심한 것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