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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

깃발 없는 사람들 깃발

정진명

티셔츠를 만들어 입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티셔츠도 만들어 입는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깃발을 만들어도 되고 만들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만들어졌는데, 그러면 깃발을 하나 만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서 하나 만들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깃발을 보고 『이미지의 배반』(르네 마그리트, 1929년)을 떠올리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러셀의 역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깃발은 이것이 깃발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깃발이 아니라, 이 깃발은 깃발이 없는 사람들 중 누군가, 그러니까 깃발을 들지 않은 사람이 들고 있는 깃발임을 주장하는 깃발이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대학생 때부터 가끔 고민하던 "아무도 대표로 세우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은 누가 대표하는가?"라는 고민에 닿아 있다. 그 때는 그런 사람들을 누군가는 대표해야한다는 생각도 했었고. 그래서 그 생각은 내가 만에 하나라도 이 깃발을 듬으로써 그런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착각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도 연결된다. 광장에 아무말 깃발을 든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애초에 안 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좀 조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