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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저자: 리단
출판사: 반비
출간일: 2021년 6월 4일

생각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부제인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말해주듯, 정신병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오랫동안 리디 위시리스트에 넣어놓고, 위시리스트에 들어있는 책이 으레 그렇듯 빛을 보지 못하다가, 십오야 구매금액을 맞추기 적합한 가격이라 구매했고 읽게 되었습니다.

정신질환을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정신병 환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용이 잘 담겨 있는 책입니다. 저 자신도 정신과 신세를 지던 기간이 있다보니 공감이 되는 내용도 있는가 하면, 저 자신이 잘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정신질환도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게 쉽지 않지요. 거기에는 사회적인 이유도 있지만, 정신병 자체가 병원에 가는 것을 방해하고, 어떻게든 의사 앞에 가서 앉아도 정신병이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하는 것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책이 그 부분을 짚어주어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2021년, 그리고 오늘은 그래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거나, 상담을 받는 일에 대한 허들이 몇십년 전에 비해서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허들의 높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주변 사람들이 있느냐. 병증이 얼마나 심하고 얼마나 눈에 띄냐. 경제적으로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가 등. 제 허들은 제가 정신과에 통원하던 십여년 전에 충분히 낮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분들에게는 그런 허들이 여전히 높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스스로를 정신병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치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고, 자의적으로 중단했던 치료를 재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신뢰할 수 있는 자조 그룹을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끊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제 정신병으로부터 저를 보호해내는 데 필요했던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이 건강하지 못한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소위 '병식'이라는 것과도 닿아 있죠. 저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중단으로, 환기로 작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책 선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보통은 추천되지 않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건 얼마나 선물 받을 사람과 그 사람과의 관계에 해로운 일일까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권하기 어렵다는 게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