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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저자: 신우승 김은정 이승택
출판사: 메멘토
출간일: 2022년 2월 7일

생각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산 책입니다. 종이책은 빌린책챌린지가 끝날 때 까지는 해당 책들을 우선순위가 높게 읽을텐데, 중간중간 남는 틈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책장에서 꺼내 읽게 됩니다. 연휴를 맞이해서 그렇게 꺼내 읽었지요.

이 책은 전기가오리의 운영자인 신우승이 오늘날 한국어로 철학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번역된 철학 용어에 대해 대안, 그러니까 새로운 번역어를 제시하고 다른 두 저자의 반박과 동의를 통해 그것을 다듬어나가는 책입니다.

저 같은 문외한에게 도움이 되도록 번역어에 앞서 그 번역어가 가리키는 맥락, 혹은 그 번역어가 쓰이는 맥락에 대한 설명도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전기가오리에서 읽었던 내용도 있고요.

어떤 학문을 번역해서 한다는 것은―혹은, 다른 언어로 진행된 학문을 수입한다는 것은―지저분한 일이지요. 저는 번역이라는 행위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장, 한 권의 책을 번역할 때에도 그러한데 학문이라는 체계 안에서 기존 학자들의 용례와 후학의 이해를 고려하여 번역어를 제안하는 일은 복합적으로 어려운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저는 한국어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영어로 된 전공서적으로만 공부했고, 한국어로 된 용어로 개념을 익히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용어들이 있다는 건 오히려 교보문고에서 한국어로 된 전공서적(포장되지 않은!)을 읽다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위상수학에서 정규 공간과 정칙 공간이라는 용어를 봤는데, 이것들이 각각 normal space와 regular space입니다. 영어로 수학하시는 분들은 안 헷갈릴까요? 잘 모르겠네요.

철학, 뭐 어쩌면 서양 철학?은 여러 분야 중에서도 꽤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 다양한 언어로 된 저술을 기반으로 작업해야 하고, 그것을 영어나 다른 언어로 옮긴 것이 중간지점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언어유희를 하는 사람이 있질 않나…. 고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이 돋아날 수 있는 환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번역을 통해 반역할 수 있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제가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은 post-가 후기-로 번역되는 걸 어떻게 다루었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그건 너무 진부한건지 아니면 문제가 아닌 건지 이 책에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조금 시간 날 때 쌓여있는 전기가오리를 조금씩 읽어서 치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방에 몇 년 치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쌓여있는데요. 저는 정말 끔찍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