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HOW TO READ 라캉
저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역자: 박정수
출판사: 웅진씽크빅
출간일: 2007년 5월 14일
원서명: How to Read Lacan
원서 출간일: 2006년
생각
『HOW TO READ 라캉』은 『일반언어학 노트』에 이어 읽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빌린책챌린지 대상인 39권 중 20권째 책이기도 해서, 이 챌린지도 이제 반환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데리다에 이어 읽는 두 번째 HOW TO READ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일단 조금 읽으며 느낀 것은 당황인데, 이 책은 『HOW TO READ 데리다』가 그랬던 것처럼 라캉의 개념과 그것이 드러나는 저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라캉을 인용하고 그를 통해서 그의 생각에서 중요한 내용과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대중문화나 사건의 장면을 연관짓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해 저자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해설서라고 할 수 있고, 역자 후기에도 그런 취지가 적혀 있으며, 심지어 저자가 너무 잘 드러나서 비전공자도 들어봤을 이름이지요. 해설서가 이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시리즈물의 한 권이 이런 식인 건 조금 의외네요.
그 당황을 제하면 책이 설명해주는 라캉의 개념들은 모순적으로 보이면서도 수긍할 만합니다. 대타자, 자아 이상과 초자아, 무신론자의 신인 무의식…. 어느 생각이 라캉이 말한 것이고 어느 생각이 지젝이 해석한 것인지 저는 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 책이 제시하는 생각들은 흥미로웠습니다. 중간에 나온 상호수동성(interpassivity, ↔interactivity)이라는 개념어도 꽤 눈을 끌었고요.
인문주의자와 근본주의자의 대립에서, (보편적 인권을 이론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문주의자가 믿음을 대표하고 (이슬람교, 불교, 유대교가 현대 과학의 발견들을 경전의 가르침의 근거로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자가 지식을 대표한다는 이야기(pp.181-182)는, 당연히 헛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떤 진실에 해체적으로 닿는다고 느낍니다. 당장 제가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을 어떤 근거를 들어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나는 이것들을 '믿는'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에서도 그러하고, 『거대한 퇴보』에서 힌두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겠지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다음 이야기를 곁들이자면 이 책과 함께 『HOW TO READ 프로이트』를 빌렸고, 둘 중에 무엇을 읽으면 좋을지 인접 학문 전공자인 와이프에게 물었습니다만, 라캉으로 시작해서 프로이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들어 이 책을 먼저 집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읽을 책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읽기에 이 책에서 라캉의 프로이트에 대한 생각을 많이 읽지는 못해 아쉬운 부분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