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혼자여서 좋은 직업
저자: 권남희
발행처: 어크로스
발간일: 2021년 5월 15일
생각
처음 몇 편을 보고 든 생각은 이게 뭐지? 였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게 이상한 책은 아닐 테니까, 내가 에세이를 안 읽긴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한번역은 어쨌든 흥미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고른 책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무엇까지 기대했을까? 번역문 A와 B 사이에서 고민하는 케이스 스터디라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에 대해 내가 한 실망을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은 (에세이가 보통 그럴거라고 상상하게 되는데)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나와는 입장도 많이 다른 사람 이야기. 거기서 인상에 남은 포인트가 두 가지.
분노
책에서 작가님이 분노하고 내가 공감하며 분노한 에피소드가 세 건 있다. 한 건은 출판사와 일하며 쌓은 분노고 한 건은 라디오방송에서 유독 ‘아줌마’라고 호명된 건이며 마지막 한 건은 대학 강사가 ‘여자가 무슨 ○○일이냐’라고 핀잔을 준 건이다. 내가 놀랐던 건, 마지막 건을 제외하고는 ‘당사자와 이야기해서 어찌저찌 풀었다’로 끝났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한 번 분노한 일을, 이미 잘 끝난 일이기 때문에 규탄할 생각 없이 글로 써서 남에게 보이는 일(마지막 건은 나한테는 규탄하는 성격의 글로 분류된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다. 아무래도 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 내가.
일 시작하는 이야기
작가님이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된 일이 지나가듯 언급된 에피소드가 있다. “아니 뭐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일 시작하는 절차가 대충이었습니다 제가 일 시작할 때도 그랬고 아무튼 진짜 옛날에는”식의 언급이었지만 번역이라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으로는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무지의 즐거움』(우치다 다쓰루, 유유) 샘플북에도 친구 소개로 번역 회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어서, “아무튼 지난 세대 분들은 일자리 이렇게 얼레벌레 얻고…” 같은 식으로 싸잡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까 정작 내가 소개받아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한 거라서 남 얘기를 할 처지가 아닌 거였다. 이 글을 보실 다음 세대, 지난 세대, 그리고 저랑 같은 세대 분들께 미안합니다.
사실은 앞 몇 꼭지만 읽고 기대하던 게 아니라 그만 읽으려 하다가, 그래도 끝까지 읽으니 마음에 남는 포인트가 있어서 이런 책이 앞으로 눈에 들어온다면 괜히 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