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호모 루덴스
저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역자: 이종인
출판사: 연암서가
출간일: 2010년 3월 10일
원서명: Homo Ludens(네덜란드어)
원서 출간일: 1938년
생각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어 읽게 된 은평구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입니다. 게임업계에서 이론같은 것을 책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책인데 정작 읽어보지는 않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굳이 업계인이 읽을 필요는 없는 책 같긴 합니다. 게임 개발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며, 저자가 'e-스포츠'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구시대적입니다.
이 책은 호모 루덴스라는 학명스러운 명명을 제시하며, 인류라는 종에게서 발견되는 놀이하는 종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여러 활동들에서 보이지만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놀이" 요소를 역사와 언어를 통해서 추적하며 근거를 제시합니다. 요즘이라면 안 쓸 법한 다른 문화에 대한 '문명인'스러운 서술이라거나 너무 자명하다고 말하며 근거를 제대로 붙이지 않은 서술 등이 거슬리지만, 법률, 전쟁(!), 지식, 시, 신화, 철학과 예술까지 인간 활동의 많은 분야에 대해 놀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1938년의 유럽은 이미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치가 집권한 상황입니다. 1차세계대전이라는 총력전을 한 번 경험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지난 역사 속 전쟁이 지닌 놀이적인 요소를 지적합니다. 총력전은 이 책이 다루는, 목숨과 패권이 걸려있음에도 규칙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던 아곤적 전쟁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유럽의 역사를 놀이 측면으로 보고 현대까지의 흐름을 분석하며 공리주의와 막시즘의 물질 숭배, 유물론적 성격과, 나치즘의 '거짓 놀이'적인 성격을 비판합니다. 시대라는 맥락을 놓고 보았을 때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오늘날(1938년)의 인류는 놀이 정신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책이 나온 뒤 인류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의의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저술인 『중세의 가을』도 중세의 문화에 있던 그러한 놀이 정신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 관심이 갑니다.
그의 저작이 그의 시대에 유의한 저작이었듯, 저는 이 분석을 오늘날에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의례에 앞서 놀이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p.59) 법률 소송이 경기와 유사하다고도 합니다.(pp.157-158) 이런 것들을 제가 보았을 때는, 인류가 자연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법을 발명한 사건이 인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태초의 규칙이 어떻게 발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관심은 아닙니다. 저한테 중요한 것은, 인류가 어떤 종류의 무리생활을 하기 시작한 시점과 원시적으로 사회라고 부를 만한 것을 이루는 어느 시점 사이에서, 인간들이 그 중 누군가가 만든 '규칙'에 동의하는 지점에 진입했다는 점입니다.
그 '최초의 규칙'이 정해지는 과정은 어떠한 무규칙 상태에서 따라야 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문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 규칙은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그 규칙은 좀 더 재미없게 자원의 분배에 의해 강제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놀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의해 구성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합리적'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규칙을 따르게 만드는 요인… 즉 '재미' 말이지요. 놀이가 인류가 가질 수 있었던 최초의 자의적인 규칙이었고, 이것의 유용함으로부터 인간은 따라야 하는 어떠한 규칙들을 일궈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놀이로부터 규칙이 발전하는 과정이 굳이 누군가의 의도일 필요는 없고, 생물의 진화와 같이 우연한 돌연변이로부터 적응압을 거쳐 집단 내의 소송이 되고, 집단 밖의 외교가 되고, 그런 규칙들로 변화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놀이'의 요소는 옅어지고 잊히기도 하였지만요.
오늘날을 분석하는 데 이 책을 활용하고 싶다고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가 되었는지 궁금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한 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합의를 보고 있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법은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법 적용과 집행에 있어서 좀 편의를 봐줘도 된다'고 믿고 행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자세히 규정하지 않은 것을 그 의도에 어긋나지만 금지되지는 않은 식으로 악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고 전파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이슈와 행동에서 자신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거기에 승복할 수 없는 상태. 어떠한 권위과 규칙에 따르기로 합의하지 않는 상태는 작자 시대의 말로 하자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 국제법과 같은 상태, 우리 시대의 말로 하자면 내전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러한, 구성원이 스스로를 참여시킬 수 있는 공동의 규칙을 재건해야 하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을 고대 인간의 놀이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면 조금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삶에 내재하는 민주적인 요소에 눈을 주게 됩니다. 결국은 주권을 갖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득한 일이지요. 그런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 『호모 루덴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