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고작 다섯 명이 한 말을 어떻게 믿어요?
저자: 송라영
출판사: 한빛미디어
출간일: 2024년 12월 13일
생각
『고작 다섯 명이 한 말을 어떻게 믿어요?』는 기업에서 UX 리서처로서 일하며 정성 연구 방법론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정리한 서적입니다. 『B급 철학』에서 이어지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일단 슬픈 것은 실무 현장에서 정성 연구라는 방법론과 그것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실무에서 겪는 팀 내 설득의 비중일까요. 책의 내용이, 그리고 책이 인용하는 전문가의 발언에서 나오는 업무 비중조차도 "절반 정도는 팀에게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쓴다"는 것이 좀 서글픕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정성 연구의 방법론과 방향성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예를 들면 학계에서는 그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지요. 인터뷰, 민족지학을 포함하여 분석하는 질적 연구는 중요한 방법론이고 인간 이해에 대한 지평을 분명히 넓혀줄 수 있는 작업입니다. 굳이 학술의 엄격한 전후 검증이 없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수집되어 배포되는 깨달음(책, 다큐멘터리…)들이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정해진 사람들이, 특히 그 제품의 성과와 관련되어 평가를 받는 특정한 사람들이, 어떤 제품의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계산되지 않는 접근을 택한다는 건 확실히 어떤 종류의 거부감을 극복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성 연구의 대상자는 전체를 반영할 수 없고(일반화할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전체 그림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대부분의 선거에서 최다 득표자로 대표자를 선정하지, 모든 표 중에서 한 표를 임의로 뽑아 거기 적힌 사람을 대표자로 세우는 제도를 택하지 않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 책이 역설하듯, 정성 연구를 통해서 정량 연구에 기대하기 어려운 깊은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할 가치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최적의 액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왠지 정량 연구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헛되이) 기대하긴 하지만요. 어차피 우리는 지금 하려는 액션이 80%정도는 맞는 것 같으면, 100% 맞는 액션을 도출하기 위해 헛된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일단 80% 맞는 액션을 집행하고, 다음 액션을 고민하는 게 맞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정성 연구를 통해 다음 액션을 정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 할 이유가 있다면, 그 팀이 그 방법론을 적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때이겠지요. 누가 와서 좋은 방법론이 있다고 해 봤자, 팀이 방법론을 체화하지 않을 거라면 방법론을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방법론이 결과적으로 팀에게 유익할 것인지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죠. (우리는 어차피 최적의 액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봤을 때에는 업계의 정성 연구를 둘러싼 상황이 많이들 이 수준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팀에게 정성 연구를 체화시키는 것까지가 많은 조직에서 실질적으로 해당 연구자의 중요한 업무인 것이 그 방증이라는 거죠. 저는 이 점 자체가 많은 조직이 정성 연구를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합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이 달려 있어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다니….
책 자체는 완성도있게 정리되어 있는데, 읽은 후의 소감을 정리하다보니 좀 절망적인 내용만 적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직군의 사람이 팀 내에서 일을 무시받지 않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세상에는 진실이 하나만 존재한다는 입장과, 사람마다 다른 현실을 구축한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같은 이야기까지 꺼내야 한다면, 그건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신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