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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장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각자장
저자: 국립문화재연구소 편(오윤영, 오윤경)
발행처: 문화재청
출간일: 1999년 12월 30일

생각

『각자장』은 『HOW TO READ 프로이트』에 이어 읽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비매품인 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이셨던 오옥진 장인의 생애와 작업 방법, 도구와 이론을 기록한 책입니다.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시리즈 중 한 권이기도 하네요.

각자라는 건 나무를 파내어 글자를 새기는 것을 주된 기술로 삼는 전통 공예로, 광화문 같은 곳에 걸리는 현판이나, 목판 인쇄를 위한 판을 만드는 작업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자를 하는 장인이 작업을 할 때 어떤 것들을 고려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작업할 때 어떤 주의사항이 있는지 등을 정리하고, 장인의 생애를 다루었습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정말 우리의 삶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않고 사는 전문영역의 존재지요. 미장 없이 따뜻한 방 안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미장공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의 사무직 직원은 매일같이 문서를 출력하지만, 문서가 인쇄되는 방법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도록 전문화되고, 사장은 사무직 직원이 어떻게 그 문서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산업혁명 같은 이야기와 무관하게 이것이 기본적인 분업이고 사회가 최적화되는 방법 중의 하나지요.

이 방법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단점을 하나 들자면 기술의 변화로 수요가 없어지는 기술을 지닌 개인이 경제적으로 사회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겠지요. 개인의 탈락은 직업 재훈련같은 절차를 통해 돌려놓을 수 있겠고, 그 기술 자체가 유지되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무형문화재같은 수단으로 보조할 수도 있겠지요.

AI가 사람 직업의 다수를 대체할 거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최소한, 제 주변에서는 일시적으로라도 그러한 방향의 의사선택이 보입니다.(경영자들의 헛발질이길 바랍니다.) 저도 업무용으로 LLM을 많이 활용하는 입장에서, 최소한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긴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이 모든 혼란이 많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내 일은 각자장의 일에 가까운가? 계산수에 가까운가?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각자장 오옥진 님은 현판이 들어갈 모판을 짜는 일까지 하셨다는데, 원래는 각자장과는 별도의 장인이 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조부 대에서는 네 형제가 모두 각을 할 수 있었다고, 그 때에는 생계 목적이 아니라 조상들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익힌 기술이었다고 하지요. 그 때와 지금을 이어 생각해보면 우여곡절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지금 그 분들의 삶의 궤적이 제게 일과 직업, 문화, 삶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네요.

이 책이 발간된 것은 1999년이고, 각자장 오옥진 님은 2014년에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