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일반언어학 노트
저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역자: 김현권, 최용호
출판사: 인간사랑
출간일: 2007년 12월 30일
원서명: Écrits de linguistique générale(프랑스어)
원서 출간일: 2002년
생각
『일반언어학 노트』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에 이어 읽은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실제로는 앞선 책보다 먼저 집은 책인데, 앞선 책이 하루만에 호로록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나중에 쓰게 되네요.
이 책을 서가에서 집은 이유는, 이 책이 소쉬르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데리다의 책을 여러 권(그라마톨로지, 법의 힘) 읽고, 오다가다 듣는 구조주의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소쉬르가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를 읽는 것이 꽤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처음 몇 장을 읽고 든 감정은 당황이었습니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에 대한 저술이 완성된 저술이 아니라 강의록을 통해 재구성되어 있다는 건 대충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흩어져 있는 텍스트들과 빈칸([ ])이 가득한 글에서 과연 무엇을 읽어야 할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제가 소쉬르를 읽는다면 언어학에 대한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인도유럽어쪽에 대한) 연구보다는 그가 후세에 끼친 개념들… 그러니까 랑그니, 빠롤이니, 시니피에니 시니피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언급을 위주로 보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것보다도 좀 더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읽은 데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있지요.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에서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언어과학이 분석하는 대상, 그러니까 언어에는 실체가(저는 '필연성'이라고 이해했습니다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다른 요소와의 차이, 다른 요소의 성질을 부정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지요.(언어의 이중적 본질에 대하여, 20b)
그리고 우리는 이런 분석을 일반화하고 싶은 욕망에 빠집니다. 인간이 만든 다른 제도들 중 그런 필연성이 없다 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그 관점을 적용해보려는 시도가 이상하지 않지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요. 그런데 이런 관점을 어디까지 적용해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제가 연결짓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쉬르는 문법과 음성학을 생리학과 해부학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해부학적 구조(신체 기관)는 다른 구조와 비교하지 않아도 실체가 있지만, 음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1968-1974 3319.2) 그러니까 언어학과 생물학의 차이가 소쉬르가 제시한 예시이고, 최소한 생물학에 대해 소쉬르의 관점을 적용하려는 것은 적어도 소쉬르가 유의미하다고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게 최소한 제가 원전을 읽은 데에서 제가 얻어간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들인 시간에 비해서 많은 피와 살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해설서를 읽는 게 더 나았겠지요. 『일반언어학강의』를 읽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른 평을 읽고 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둘이 얼마나 다른 책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엉뚱한 결말입니다만, 뭐 애초에 서가에서 대충 좋아보이는 책을 집으며 독서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겪을 일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