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정진명

서지정보

제목: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원어 제목: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개봉: 1964년

생각

저는 영화를 잘 보지 않고 극장도 잘 가지 않지만, 둘 중 뭘 더 안 하고, 뭘 더 안 할 이유가 많냐 하면 극장에 안 가는 게 더 강한 편입니다. 영화는 가끔 생각날 때 보지요. 제가 하는 일이 어쨌든 영상문화와도 인접해 있다 보니 일을 위해서 참고해야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는 영화가 세상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 보게 되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았으면 이 김에 하나 등록하고 봤을텐데, 이 영화가 살아있는 서비스가 없는 것 같아서 유튜브 영화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소냉전, 상호확증파괴 이론에 입각한 아슬아슬한 평화…를 소재로 삼은 코미디 영화입니다. 세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극히 공적인 상황과, 그것을 최전선에서 다루는 사람들의 극히 개인적인 동기들을 대조하여 심각함과 어처구니없음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영화 자체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콩 소령이 탑승한 B-52가 임무에 성공할지 여부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점입니다. 그들은 진지한 임무를 위해 투입되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임무 달성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전략 달성을 목표로 행동합니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주동 인물처럼 묘사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성공은 더 큰 차원에서의 실패를 의미하지요. 그러한 상황과 영화의 시선을 둘 다 지닌 상태에서 우리는 그들의 임무 수행 과정을 전쟁 영웅의 모험처럼 보게 되고, 그것이 착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지요. 파멸의 날 기계(Doomsday Machine)는 소련에 묻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오작동으로 인류가 파멸할 수 있는 체계 자체가 파멸의 날 기계 아닌가. 그런 파멸의 날 기계의 발동이라는 총체적인 실패라는 과정의 대부분은 결국 대부분 올바른 과정의 수행, 즉 성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아닌가. 저는 이렇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어서, 영화를 본 뒤에 겸사겸사 검색해보던 도중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일을 이 영화와 연관지어 언급한 트윗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24년 12월 3일의 일은 굳이 우화로 만들 필요가 없이 일어난 일들 자체에 코미디인 부분이 많아서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라는 영화도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