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서명: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저자: 마이클 샌델
역자: 이경식
출판사: 와이즈베리
출간일: 2023년 3월 16일
원서명: Democracy’s Discontent
원서 출간일: 2022년(초판 1998년)
생각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사천미식』에 이어 읽고 올리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마이클 샌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아닌가, 정의는 무엇인가는 읽었던가? 아무튼 기억나는 게 없으니 읽었다고 해도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눈에 들어왔고, 민주주의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하던 차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비바 악티바 개념사 시리즈의 자유를 읽었을 때 의식하게 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역사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을 가리켜왔는지는 꽤 간극이 있습니다. 마치 『브루스 테이트의 세븐 랭귀지』에서 io 언어를 보고 우리가 오늘날 객체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역사적으로 객체지향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를 가리켰는지는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 책은 미국의 역사에서 있었던 여러 경제 정책과 관련된 논쟁이 지닌 성격이, 미국인들이 추구하던 자유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담론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19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미국인은 자치에 필요한 시민적 덕목을 사람들에게 고취할 방법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되면 미국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목적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권리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p.266)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미국의 초창기 역사, 그러니까 다국적 기업도 없고, 전국적 유통망도 없고, 임금 노동자와 노예가 공존하던 시절의 정치 논쟁을 보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대규모 공장에 의한 산업은 민주 시민 양성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품목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노동자층을 대변하는 당이 정부의 경제 개입이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업인과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당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시절이 있다는 것들이 말이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본의 힘은 국가와 맞설 정도로 강력해졌으며, 그에 거스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루즈벨트와 케인즈가 정부란 '가치 중립적'으로 경제적 성장과 국가의 번영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뒤로… 우리는 우리 세대의 문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소비자가 되어 시민의 정체성보다 소비자의 정체성이 더 중요해졌고, 그 한켠에서 사람들은 정치가 나를 대변해주지 못한다는 불안에 빠지고, 그 불안을 캐치한 포퓰리스트들의 발호를 낳았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1996년에 나왔습니다. 제가 최근에 고민하던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논의들이 이미 이 책을 쓰는 시점에도, 이 책이 언급하는 사례의 시절에도 논의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2022년에 개정판을 출간하며 추가된 챕터 7에서는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세계화와 금융화, 능력주의가 미국 시민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바이든의 당선 이후에, 그리고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 이전에 쓰인 이 책은 트럼프라는 사건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을 죽였고, 왕도 끌어내렸습니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서 스스로 갈 길을 정해야 하고, 그 판단과 선택이 잘못되면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지요.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잘못된 판단으로 주인됨을 빼앗기고 있는 지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이전 사람들이 했던 비슷한 고민을 참고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