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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초예술 토머슨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
역자: 서하나
출판사: 안그라픽스
출간일: 2023년 7월 26일
원서명: 超芸術トマソン
원서 출간일: 초판 1985년, 문고판 1987년

생각

『초예술 토머슨』은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사와 구조 변경 끝에 만들어지는 퇴화한 구조를 예술가의 의도 없이 생성되는 초예술로 받아들이며, 토머슨이라는 이름으로 개념이 생겨나고 그 사례들이 발견되고 답사된 흔적을 모은 책입니다. 원서 출간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4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룬 책이지요.

읽다 보면 나오는 고현학(考現學)같은 키워드를 보면 이 블로그에서도 자주 다룬 panpanya 작가 생각도 나는 것이, 그의 작품이 이런 생각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그의 이름을 넣고 Amazon에서 검색을 할 때 나온 책 중 하나의 표제가 『고현학이란 무엇인가?』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도서전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노상관찰학이라는 키워드를 봤고, 그 키워드가 들어간 책의 책등에 2권이라고 붙어 있었는데 이 책의 책등에는 1권이라고 붙어 있었기 때문이니까, 결국은 panpanya 작가를 쫓다 보니 이 책에 도달하게 된 셈이지요.

이 책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포인트가 꽤 많았습니다. 이런 활동이 추구하는 미감에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저도 이런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2013년 쯤에 길을 나서보면 모터가 포함되어 인사하는 마네킹이 업장 홍보용으로 배치되곤 했었는데, 이렇게 말로 설명하면 기억나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때 그것들의 사진들을 모아 인터넷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보면 기억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흰 배경에 각종 복장을 입은 여성 마네킹이 여러 자세로 서 있다.

이것은 이 책이 주로 다루는 '토머슨' 종류는 아니지만, 길에 보이는 것들을 궁금해하고, 어째서 이것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추측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아마 같은 행위의 맥락에 닿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 가지 측면으로는 제가 게임의 버그에서 보는 미학도 들 수 있겠지요. 여러 모로 같은 취미를 지닌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 책의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토머슨 물건의 환경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pp.298-299)입니다. 한 마디로 토머슨을 향유하는 사람이 주민에게 그것을 괜히 언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저는 일단 멈춰서서 정말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관찰자가 대상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글쎄요.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저는 위의 홍보용 마네킹이 어떤 이유로 우후죽순 생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인형을 저기에 갖다 놓고, 그 대가로 돈을 번 누군가는 알고 있는 일이겠고, 십중팔구는 대단한 비밀도 아니겠지요. 제가 불간섭을 택한 대가로 잃은 것이 바로 이 물건들의 진실을 알 기회입니다. 저는 그게 후회스럽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물어봤어야 하지 않았나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도 주변 주민의 이야기를 듣거나 관계자의 가족의 증언을 듣는 등(pp.129-133, pp.228-235) 위의 주장을 관철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길거리의 놀라움을 대하는 최적의 방법은 단순한 불간섭보다는 좀 더 어려운 방법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은 좀 더 나은 접근 방법이 있겠지요. 노상관찰학과 고현학 논의를 좀 더 공부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토머슨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유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토머슨이라는 이름은 당시 일본의 야구에서 외국인 용병으로 기용되었다가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야구선수 Gary Thomasson에서 따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에게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고, 유명인에게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며, 야구선수에게는 왜 특히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일 잘하는 사람보다 일 못하는 사람에 감정이입하기 쉽습니다: 그냥 제가 일을 잘 못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전 대통령 중 누구가 출근도 제대로 안하고 방에서 잠만 잔다고 할 때도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지'만큼이나 '나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었구만' 같은 생각을 했지요. 저는 호모 파베르의 사회에서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운 좋게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계속 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구조물, 그러니까 토머슨은… 쓸모가 없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무용(無用)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제거되지 않고 존재합니다. 그런 것에 실존한 사람의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왜 좋은 아이디어였을까요. 이제는 물어보기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책의 저자인 아카세가와 겐페이 선생님은 2014년 타계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