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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정진명

서지정보

서명: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저자: 로절린드 C. 모리스(엮음),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외(지음)
역자: 태혜숙
출판사: 그린비
출간일: 2013년 4월 30일
원서명: Can the Subaltern Speak?: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an Idea
원서 출간일: 2010년

생각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통칭 스피박이 쓴 동명의 에세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기반으로, 그 에세이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다른 에세이들을 엮어 낸 책입니다. 와이프의 서가에 있는 것을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서발턴이란 개념은 그람시가 처음 만들었고 구하가 만든 그룹에서 발전했으며 스피박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저같은 사람도 들어본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해당 에세이의 근간이 되는 강연이 있었던 1983년, 글로 정리된 형태로 나온 1988년에 거쳐 증보판이 나온 1999년 버전, 그리고 그와 화답하는 여러 에세이를 거쳐, 그런 논의들에 대한 스피박의 응답을 엮어 2010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언급한 텍스트 자체와, 그 텍스트에 덧붙이는 텍스트가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형태죠.

스피박의 개인적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는 에세이로부터 출발해 그 생각이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다르게 전개되고, 미국이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의 지역에 적용되며 연결되는 것을 읽어나가는 것이 꽤 흥미롭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스피박의 에세이를 잘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좀 어렵긴 하네요. 약간 시간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 싶어 부록으로 담긴 초판 버전을 먼저 읽었는데, 그냥 처음부터 읽는 게 나았으려나 싶기도 하고요.

스피박이 에세이에서 푸코와 들뢰즈의 대담을 비판하고 데리다의 유보를 이야기하며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것은 대충 이 책이 철학쪽 책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만, 저한테는 완전 다른 장르(?)의 작가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이 언급되고 비판되는 것이 생경했습니다. 무슨 헛소리냐는 생각이시겠지만, 저한테는 이제 푸코들뢰즈데리다랑 샌델스티글리츠 뭐 이런 사람은 그냥 시대가 달라서….『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연결이 생기면 되게 머리가 고장나는 것 같습니다. 임창정이 가수였어?

스피박은 '전형적인 서발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계급의 사람'의 예를 들어 서발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에 어떤 서발터니티가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정치혐오를 내면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저를 포함한 한국인이, 제가 사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만한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등한 상대와 논쟁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시민단체나 노조, 집회시위에 대한 조건반사적 거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사회에 필요한 자기 주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공통 인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주권자의 목소리를 알아서 억누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시민 전체를 서발턴화하고 정치계급을 귀족화하는 힘이라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언어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요구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실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이 블로그를 쓰는 이유도 결국 오늘날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실천의 일환인데,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골치아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