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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사회

정진명

서지정보

도서명: 번안 사회
저자: 백욱인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발간일: 2018년 8월 13일

생각

『번안 사회』는 도서관 서가를 훑다 발견하고 집어온 책이다. 『영속패전론』을 읽은 반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현대 한국사의 풍경을 보고 오늘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무의식들을 살펴보고 싶다는 맥락에서 고른 책이었다.

저자가 다른 지면에 연재하던 글을 엮어 낸 책이라, 27개의 꼭지가 제국, 생활문화, 대중문화라는 세 분류로 묶여 소개되어 있다. 서양이라는 '원본'과 그것이 근현대의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며 번안되는 예시를 다양하게 들고 있다.

내용을 적기 위해서 한 꼭지 한 꼭지 돌이켜 읽어보면 저자의 시선에 동의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내가 이미 저자 입장에서는 "망가져버린 문화"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겠지. 이를테면 식품업 꼭지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1980년대에는… (중략) …음식 자체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환경과 분위기가 주목받게 된다. (중략) 1990년대 스타벅스 같은 커피 매장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 수입되고 대형 할인 매장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음식 문화는 획일화되었다.

80년대 말에 태어난 나는 음식 자체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환경과 분위기가 주목받도록 변화했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는다. 나한테 음식을 소비하는 환경과 분위기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식사라는 행위의 일부분이었다. 환경과 분위기를 신경쓸 겨를 없이 음식 자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나는 빈곤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세대의 식탁에 풍요를 가져다준 선배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만.

프랜차이즈의 진입으로 음식 문화가 획일화되었다는 얘기도 어떤 말인지 잘 모르겠다. 프랜차이즈가 아니고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그만큼 있으면 그만큼 음식 문화가 다양해지는가? 나한테는 지금 정도(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근 20년 정도를 평균낸 감각적인 이야기일 것이다.)로 프랜차이즈도 있고 개인 가게도 있는 것이 규격화가 주는 안정감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정도로 적당하지 않나 싶은 감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식으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시선들이 중간중간 보여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번안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관념을 수출하게 된 분야에 대한 꼭지가 없거나 언급이 없는 것이다. 한국인이 없고 외국에서 기획되는 그룹마저 나오는 K-POP이라는 현상이나, 인터넷이라는 매개체에 가장 형태적으로 잘 적응한 만화인 웹툰 등. 지엽적이긴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를 인도에서 번안한 『ZINDA』 라거나. 이런 분야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무엇이 이런 사례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번안해오던 과거를 딛고 넘어 고유한 것으로 내세울 수 있게 만들었나? 다른 게임을 보고 베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