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정보
“밯망희”라고 적혀 있는 것이 특징인 티셔츠.
해설
이 티셔츠는 여기저기서 이상한 티셔츠를 찾아 입다가, 처음으로 내가 디자인한 티셔츠다. 한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 아희를 소재로 삼아 만든 티셔츠로, 각 부의 도안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 소매
아희의 로고이다. - 앞면
‘밯망희’는 아희로 짠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이다. 이 코드를 실행하면, 사용자의 입력을 한 글자 받아서 그 글자의 컴퓨터 내부 일련번호(기술적으로는 해당 문자의 유니코드 코드)를 표시해준다. 예를 들자면 한글 ‘잕’을 입력하면, 해당 글자는 유니코드 U+C795에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16진수를 10진수로 바꾼 51093이라는 숫자를 출력해 준다. 그래서 이 티셔츠의 앞면은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와, 예시 입력 내용과, 해당 내용을 입력했을 때 나오는 출력을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뒷면
뒷면은 프로그래밍 언어 아희로 [링크]“Hello, world!”를 출력하는 프로그램[/링크]의 소스 코드이다.
생각
오늘날 티셔츠는 아이디어를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옷이다. “입고 다닐 수 있는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티셔츠라는 옷 자체가 주는 특징은 꽤나 희미해졌고, 단순한 전후면 구조로 인해 시인성 높은 도안을 출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요즘은 약간의 기술과 지식이 있으면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나만의 디자인이 들어간 티셔츠를 만들어서 입고 다닐 수 있다.
나는 티셔츠를 만들거나, 입을 티셔츠를 고를 때 “이 티셔츠를 통해서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이 흥미를 보일 만한 화제를 고르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그 사람이 흥미를 보일 만한 도안이 있는 티셔츠를 고른다. 이 티셔츠를 만들기 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재미있는 티셔츠를 사서 입고 다닐 때에도 그런 기준을 할 수 있는 만큼 추구했다.
이 티셔츠는 원하는 만큼 작동한다. 티셔츠는 스몰토크 소재를 1 늘려주는 옵션이 있는 장비 아이템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냥 봤을 때 평범하지 않은 티셔츠 디자인은 부담스럽지 않게 대화 소재로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낼 필요도 없고, 상대가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대화 소재가 된다. 상대 입장에서도 실례할 걱정 없이 꺼낼 수 있는 소재인 편이다. 상대가 “특이한 티셔츠를 입으셨네요”라거나 “밯망희가 뭔가요?”같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이 글에 있는 ‘해설’ 내용을 그때그때 맥락에 맞춰 가감하여 설명한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상대는 나에 대한 (내가 제공해도 무방한) 정보를 얻고, 나도 상대와 대화를 잘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으며, 스몰토크로써 충분히 작동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후로 만든 티셔츠들도 이렇게 작동하길 바라며 만들었다.
한편으로, 처음 만든 티셔츠이고 내가 디자인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지는 않을텐데…라고 생각하는 포인트나, 지금 만든다고 해도 이렇게 하긴 했겠지만 이런 디자인의 티셔츠를 더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몇 군데 있다. 일단 색 선정이 좀 아쉽다. 검은색에 흰색은 너무 과도하게 눈에 띄어, 밝은 회색 정도가 더 예뻤을 것 같다. 그리고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전면에 나서는 디자인은 시선을 너무 끌어온다. 한국에서 이걸 입고 다닐 때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앞면에 과도하게 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뒷면에 끌리는지는 내가 확인할 수 없다.) 약간은 인지적 공해 같은 티셔츠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한국어 사용자가 적은 곳에서 입고 다니기 재밌는 디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