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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어게인스트 더 스톰

정진명

서지정보

게임명: Against the Storm
개발사: Eremite Games
배급사: Hooded Horse
출시일: 2023년 12월 8일(스팀, 1.0)
장르: 전략, 도시 건설

생각

서문

『어게인스트 더 스톰』의 핵심 게임 플레이가 무엇이냐고 하면 도시 건설(정착지 건설)입니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더 나은 건물과 일꾼의 배치, 자원의 분배를 고민하고 지시하는 데 씁니다. 『어게인스트 더 스톰』에서 플레이어가 무엇이 되냐면 도시 건설을 감독하는 총독입니다. 플레이어는 여왕의 통치 하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짓기 위해 파견되어 소수의 주민들과 함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나갑니다. 『어게인스트 더 스톰』에서 플레이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명망을 높이 쌓아야 합니다. 명망은 주민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거나, 여왕의 지령대로 도시를 발전시켜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주민을 모두 잃거나 여왕을 분노하게 만들면 패배합니다.

이와 같이 『어게인스트 더 스톰』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하게 되는 행동과, 그 과정에서 자신을 무엇에 이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플레이어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세 가지는 모두 이 게임이 도시 건설 장르의 게임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정작 이 게임을 접하고 플레이하게 되면, 플레이어는 이 게임이 다른 도시 건설 게임들과 크게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시 건설 게임의 맥락에서 본 『어게인스트 더 스톰』

도시 건설 게임이라고 하면 아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임 프랜차이즈는 심시티 시리즈일 것입니다. 요즘은 시티즈 스카이라인 시리즈가 그 명맥을 이어받고 있지요. 이 시리즈의 게임 플레이는 비디오 게임에 보통 기대하는 목표와 도전들로 채워진 구성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장난감이 주어져 있고 그 장난감을 원하는 대로 가지고 노는 것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르의 게임들이 목표와 도전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게임에는 건설에 드는 비용을 조금이나마 신경써야 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고, 최소한도의 목표도 포함되어 있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세운 도시가 스스로의 복잡성과 부작용, 확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비효율적이 되는 종류나, 자연이나 경쟁자의 위협으로 인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측면에서 장르에 색다른 바람을 불고 온 것이 『Banished』(Shining Rock Software, 2014)였습니다. 이 게임의 포인트는 도시 건설과 자원 관리를 생존과 직결시켜, 도시 건설 장르의 게임이 긴장감 있게 플레이될 수 있음을 플레이어들과 개발자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식량, 온도 변화로 인해 개별 주민들이 사라지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파급효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게임 오버에 근접하는 방향은 여러 게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게인스트 더 스톰』(이하 『폭풍반대』)도 그 계보 위에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플레이어가 대항해야 할 재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폭풍기에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주민들이 정착지를 떠나는 위협에 빠지는 것이 이 게임의 주요한 도전이며, 이 도전을 해결하며 명망이라는 점수를 쌓는 것이 게임 한 세션을 클리어하는 조건입니다.

『폭풍반대』가 이 계보 위에 있으면서 이 종류의 다른 게임들과 핵심적으로 다른 부분은, 하나의 정착지에 대한 ‘게임 끝’ 선언이 명료하고, 다음 정착지로 넘어갈 동인이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많은 도시 건설 게임들은 도시 하나를 건설하고 난 뒤 다른 도전이나 조금 어려운 도전, 혹은 플레이어가 자주적으로 해보고 싶은 시도를 하기 위해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루프가 약한 편입니다. 많은 게임이 명시적인 세션 종료 정의 없이 ‘플레이어가 이 도시에 질리는 시점’까지 플레이할 수 있게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르에서는 난이도를 높여서 게임오버를 앞당길 수는 있지만, ‘승리하고 다음 판’을 앞당길 수는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폭풍반대』는 명망이라는 점수를 빠르게 쌓으면 정착지가 어떤 상태이건 세션을 승리하고 다음 게임을 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입니다. 또, 이미 충분한 명망을 쌓은 세션을 게임 클리어 이후에도 이어서 계속 이어 하는 것보다, 새 정착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호하도록 세션 안팎으로 게임 구조가 짜여 있습니다.

이런 게임이 되기 위해서 『폭풍반대』가 선택한 대표적인 디자인들을 몇 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설계도가 세션마다 다르게 해금되며, 필수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설계도는 ‘세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해금해야 합니다.

    ‘세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획득하는 방식은 『Slay the Spire』(Mega Crit, 2017)의 성공 이래로 수많은 로그라이트, 내지는 반복 플레이 가능한 다양한 플레이를 제공하는 게임의 표준 문법이 되었습니다. 『폭풍반대』도 이 문법을 채택한 게임입니다. 주민들은 식량, 주거, 의복, 서비스 등 종족에 따라 다양한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데, 그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는 획득되는 자원을 가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을 가공하는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위 방법을 통해 획득하는 설계도로 지어야 합니다.
    이 요소는 『폭풍반대』를 계속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만듭니다. 플레이마다 주어지는 설계도의 선택지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런 방법을 채택하지 않은 도시 건설 게임에 비해 ‘빌드를 최적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최적화된 경로로 플레이가 고착되기 어려우며, 매 게임마다 달라지는 종족 구성, 지형, 시작 자원들의 요소와 함께 거의 매 게임 최선의 계획을 찾아나가는 재미를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습니다.
  2. 내가 지금부터 건설할 정착지의 전체 지형을 확인할 수 없으며, 게임을 진행하며 Fog of War를 벗겨나가듯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많은 도시 건설 게임에서 지도는 시작과 동시에 주어지는 정보였습니다. 『폭풍반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건축을 위한 공간이 열려 있지 않고, 지형은 빽빽한 숲으로 막혀 있습니다. 나무를 캐는 일은 이 게임에서 자원을 획득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탐험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나무를 조금 캐고 넓은 공간을 획득하며 새로운 자원, 이벤트를 만날 수 있는 ‘빈터’를 여는 일은 직접적으로 게임의 위협 수준을 높입니다. 플레이어는 빈터를 열기 전까지 거기에 무슨 자원이 있고 무슨 위험이 있을지 확인할 수 없으며, 발견되는 자원과 위협에 따라 계획을 조정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3. 게임 내에서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플레이어가 설치한 모든 정착지는 파괴되고, 다시 게임을 진행합니다.

    플레이어는 월드맵 중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나가며 정착지를 짓습니다. 완료된 정착지는 플레이어를 대표하는 총독에게 경험치와 자원을 주고, 이것들은 플레이어의 게임플레이를 조금씩 쉽게 만들어주는 업그레이드와 새로운 요소를 해금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일정 주기마다 플레이어가 설치한 모든 정착지가 파괴되고, 플레이어는 월드맵 중심으로 돌아와 다시 외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여러 이벤트를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게인스트 더 스톰』같은 게임이 또 나올 수 있을까요?

세 가지만 예로 들었지만, 『폭풍반대』를 처음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눈에 들어오는 많은 디자인들은 이 도시 건설 장르 게임이 끝없는 반복가능성을 지닌 로그라이트 게임이 되는 데 기여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디자인들을 잘 쓰면, 로그라이트의 재미를 지닌 도시 건설 게임을 만들고 『폭풍반대』와 충분히 다른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꽤 어려워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규칙을 플레이어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폭풍반대』의 규칙만을 가져올 수 없고, 『폭풍반대』의 세계에 필적하는 무언가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제가 언급한 대표적인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설계도가 세션마다 다르게 해금되며, 필수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설계도는 ‘세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해금해야 합니다.
  • 내가 지금부터 건설할 정착지의 전체 지형을 확인할 수 없으며, 게임을 진행하며 Fog of War를 벗겨나가듯 확인해야 합니다.
  • 게임 내에서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플레이어가 설치한 모든 정착지는 파괴되고, 다시 게임을 진행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도시 건설 게임을 하나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규칙이 제시되면, “왜?”라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건물 설계도를 얻을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세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지고 하나를 고르면 그 건물은 바로 지을 수 있게 되지만 다른 두 설계도는 활용할 수 없습니다. 왜? 이 지역 전체에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어떤 순서로 확인할지도 플레이어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가 지은 모든 정착지는 사라지고, 어디에 정착지를 짓는지의 고민을 다시 해야 합니다. 왜?

이 질문들은 우리가 도시 건설 게임들에 대해 지닌 직관적인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나오게 됩니다. 건설할 수 있는 건물의 ‘테크 트리’는 이름이 그렇듯 가지는 칠 수 있지만 선형적이어야 합니다. 지형은 게임 시작과 함께 공개되어서, 플레이어가 미리 계획을 세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건설한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하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도시 건설 게임이라고 했을 때 이런 걸 기대하게 됩니다. 『폭풍반대』은 ‘도시 건설’, 좀 더 나아가 ‘생존 도시 건설’ 장르의 게임을 기대한 플레이어에게 기대를 배신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는 게임입니다. 『폭풍반대』는 그런 부분을 플레이어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만들었을까요?

『어게인스트 더 스톰』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

잘 설명되는 게임을 만들고, 기대를 배신당했다고 느끼기 전에 이게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게임임을 보여준다- 같은 “게임의 퀄리티를 높입니다” 같은 답안을 제외하고, 『폭풍반대』가 선택하고 잘 수행한 방법은 게임플레이를 잘 설명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마법적인 폭풍이 세계를 한 번 멸망시켜버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위협인 시대에, 마법적인 힘으로 보호받는 문명 최후의 도시와 거기 살아가는 다양한 종족들을 위해, 인내심이 낮은 여왕의 지시를 받아 적의 가득한 숲에서 정착지를 짓는 것이 이 게임의 전반적인 설명입니다.

마법적인 폭풍은 생존 도시 건설 게임에서 자연스러운 계절(겨울)과, 지금까지 지은 모든 정착지를 버리고 도시로 후퇴하는 것을 설명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문명 최후의 도시는 로그라이트 특유의 “재시작 지점”으로 기능합니다. 다양한 종족들은 다양한 필요와 특징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고, 그 차이가 충분히 크도록 비버, 하피, 개구리같은 외형을 가지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여왕의 존재는 정착지를 건설하는 시간의 제한과, 건물의 설계도와 업그레이드를 ‘세 개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규칙’으로 기능합니다. 숲이 지니는 적의는 숲을 개척해 빈 공간을 획득하는 과정을 로그라이트적 선택으로 만드는 위협으로써 기능합니다.

이 설명은 세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게임플레이 요소에 대응시키기 위해 환원해 설명한 것이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 보면 이 요소들이 잘 조화되어 게임의 독특한 느낌을 만든다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와 물, 바다가 적대적이고, 숲은 위험으로 가득차 있으며 불이 오염을 정화하는 독특한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는 여왕과 그 대리자가 정착지 사정을 잘 모르고 무심하게 제시하는 선택지 중에서 고민하게 되고, 어떤 빈터를 열고 어떻게 도시를 확장해야 제일 기대값이 높을지 고민하게 되고, 이번 플레이동안의 실패와 성공을 곱씹으며 다음 주기를 준비하게 됩니다.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을 수 있던 불일치감에 대해서는 조금 덮어둔 채로요.

도시건설 로그라이트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도시건설과 로그라이트를 조합한 게임은 최근 여럿 선보이고 있습니다. 『DotAGE』(Michele Pirovano, 2023)는 게임플레이 면에서도 괜찮고, 하나의 정착지를 만들어나가는 느낌도 만족스럽지만 명확한 턴제를 채택하여 도시건설 장르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Stacklands』(Sokpop Collective, 2022)는 도시 건설이 테마만 남고 게임플레이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었고, 『Cardboard Town』(Stratera Games, 2023)은 점수 계산 기반 - 명확한 목표나 위협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더 고전적인 샌드박스에 가깝지만, 형식적으로는 로그라이트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폭풍반대』는 지금까지의 도시전설 로그라이트 게임들 중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이 만족의 많은 부분이 도시건설에 잘 접목되는 로그라이트 게임플레이를 발굴한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많은 부분은 이런 게임플레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세계 만들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게임플레이를 먼저 설명하고 세계를 게임플레이에 따라 설명했지만, 제작 과정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저는 게임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보면 이런저런 부분을 떼고 다른 부분과 조합해 다른 게임의 형태가 가능할지 고민합니다. 앞부분의 질문도 그래서 나온 것이고요. 하지만 『폭풍반대』의 게임플레이만 뗀다고 해도, 그 게임플레이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폭풍반대』만큼 플레이어에게 설득력있는 게임을 만드는 건 꽤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