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생각을 굳이 써서 남기는가?
호명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크게는 집단으로서 인지되지 않는 “디폴트 인간”으로서의 특권에서부터, 작게는 다른 사람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군중 속에 숨을 수 있는 특권까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써서 내놓는 것은 소박하게나마 그런 특권을 내려놓는 여러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런 방법이 글쓰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TV에 출연하며, 유튜브나 팟캐스트 채널을 운영하며, SNS를 운영하며 이런 특권을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그것은 지명도일 수도 있고, 수익일 수도 있고, 자기만족일 수도 있고, 어떤 사명감일 수도 있겠죠. 만약 제가 블로그를 새로 만들고, 글을 씀으로서 굳이 호명될 여지를 만든다고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2024년은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그다지 좋아보이는 시기는 아닙니다. 영상 콘텐츠와 경쟁해야 합니다. 충분히 큰 사용자 풀을 가진 플랫폼 이전에 안정적으로 운영을 지속할 서비스를 찾기조차 불안합니다. 글을 써서 올린다고 해서, 글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 닿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검색 결과 첫 페이지의 경쟁은 포화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검색하기보다도 LLM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콘텐츠가 있고, 글을 읽을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2024년은 블로그를 읽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시기입니다. 2013년의 Google Reader의 폐지는 여러 측면에서 징후적이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같은 “숏폼 블로그”가 자리잡았고,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 콘텐츠는 늘어났습니다. 2022년에는 다음 블로그가 티스토리에 집중하는 형태로 문을 닫았고, 2023년에는 이글루스가 서비스 종료되었습니다. 많은 문서가 없어지고, 많은 저자가 떠났습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검색 엔진과 수익화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입니다.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글쓰기보다는, 누군가가 궁금해해서 답을 찾을 법한 글쓰기들이 우선적으로 쌓였습니다. 글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는지, 더 깊게 고민했는지보다도 페이지 뷰를 버는 데, 상품을 노출시키는 데 성공하면 보상이 주어지도록 정렬되었습니다. 그런 글들에 밀려 제가 읽고 싶은 글들은 어디 있는지 찾기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싫어서, 블로그를 기점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읽을거리가 없는 게 싫습니다. 무언가를 쓰는 게 의미없다고 느껴지는 게 싫습니다. 제게는 세상에 발신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이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깝습니다. 제가 어디다 휘갈겨 쓴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슬슬 참기 어렵습니다. 제가 뭐라도 쓰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나도 한번 써 볼까?”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글로, 세상에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일본에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고 알려지는 명언을 믿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대부분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당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고 일본에 알려짐. 『영속패전론』(시라이 사토시 씀, 정선태 외 옮김)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
그래서 저는 블로그에 뿌리내리고 글을 쓰려 합니다. 저는 정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