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고 바깥 나들이중이던 와이프와 합류하여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한 북스캐너를 시험가동해본 결과가 썩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책을 위한 공간을 많이 만들 수 있겠다고 기뻐하던 차에, 트위터를 보던 와이프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소식을 알려왔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복합적일 것이다. 계엄령이라고? 진짜로? 무슨 근거로? 박근혜 정부에서 시도했던 계엄령 정황,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미국 대사, 윤석열 정부도 준비중일 수 있다고 하는 소식, 내가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한 “패턴 예측의 쾌감”과 이딴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같은 정신차리기 시도 등 온갖 생각들이 오갔다.
조용히 인터넷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며 와이프에게 꺼낸 말은, “가만히 집에 있지는 못 할 것 같다”였다. 와이프는 내가 가면 본인도 간다고 말했다. 7월부터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간다면 아마도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라면 나가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프도 함께? 안전하게 집에 있으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과, 나를 혼자 보내고 집에서 가슴졸이며 있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마음 속에서 요동쳤다.
일단 옷을 차려입으며 생각하는 동안, 지금 나가는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횡설수설하는 나를 기다리며, 와이프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 “국회로 와 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도 나와 같은 시민이다. 내가 윤석열 당선에 대한 우려로 시민단체에 대한 후원금을 늘린 것처럼, 그는 지지하는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해 당에 가입했다. 그걸 본 나는 두 말 않고 “가자”고 말했다. 그와 나는 독립적인 시민이며,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택시를 잡아 여의도로 가는 도중에 라디오와 트위터, 단톡방은 전차, 장갑차, 헬기의 동원과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려 하는 소식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와이프와 손을 잡았다. 두려웠던 나머지 손을 너무 세게 쥐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님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동생이 결혼식을 올린 식장 앞에서 내려 정문까지 걸으며 여길 이렇게 다시 오네, 같은 이야기를 했다. 걸어가며 말했다. 일단 상황을 보려고 한다고. 외곽에 있을 거라고.
도착해서는 다들 아는 대로다. 의원들은 서로의 방법으로 본회의장에 진입했고, 군인들은 건물 유리창을 깨면서까지 건물에 들어갔고, 보좌관을 비롯한 내부 인원들은 급조 바리케이트를 치고 소화기까지 활용해서 군인들의 길을 막았다. 시민들은 내부에서 군인들에게 항의하고 차량의 진입을 방해하고 집회의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 모든 사건의 바깥에 있었다. 기록을 남기고,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상태를 공유하려고 했지만 무선망은 잘 작동하지 않아서 띄엄띄엄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저 나는 현장에 폭력의 조짐이 보이면 대열에 뛰어들거나, 현장에 폭력의 조짐이 보이면 와이프를 안고 도망갈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거기 그저 서 있었고 앉아 있었다. 이런 소극적인 자세도 시민 연대의 일부분이라고 믿으면서.
현장에 12시 20분쯤 도착해서, 4시쯤 현장을 떠났다. 아침으로 이어질 집회까지 집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6시 이후에 퇴각하고 싶었지만 교통 통제가 부분적으로 풀릴 정도로 현장 인원이 줄었고, 사태가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처럼 보였고, 와이프의 건강을 생각하여 일찍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본 사건의 흐름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쓰지는 않겠다. 카메라가 다 돌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그저 내가 들은 이야기와 우연한 생각들에 대해서 쓰고 싶다.
술을 마시고 들어가서 씻기까지 했는데, 소식을 보고 새마을호를 타고 올라왔다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분과 이야기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60대 여성분과 이야기했다. 내가 “이거 장기화되면 지난 탄핵때처럼 먹는거 파는 사람들도 오고 이럴 수도 있다”라고 와이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70년대 학생운동때도 그랬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이야기를 함께 했다. 일행과 함께 나이 많은 우리들이 앞에 선다거니, 나이를 먹으면 겁이 없어진다거니, 그런 말씀을 하고, 와이프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좋다거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50대 남성분과 이야기했다. 씻고 주무시려다가 국회로 와달라는 민주당의 메세지를 받고 편의점을 대충 털어 사온 빵과 우유를 나눠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변 사람들이 ‘사람은 좋은데’ 정치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진영을 지지하고 그런 후보에 투표하는 현상을 이야기하고, 본인이 학생운동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유튜브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요즘은 유튜브에서 본인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는 현상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태워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대열 밖에서 산발적으로 들리는,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에 대한 욕설을 들었다.
교통통제 판단이 늦는 것에 대해 경찰과 실랑이하며, 시민들이 차도로 나오기를 요청하여 오던 차를 유턴시키고 교통통제 상태로 만드는 시민들을 보았다.
(나중에 기억이 나서 추가) 새벽이 깊지 않은 시점, 일본어로 말하는 두 관광객이 위험한 것 아니냐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숙소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대열에서 떨어져 있는 중년의 경찰과 이야기하며 ‘이 사람들은 착한 시민들이고…’ 같은 식으로 시민들을 폭력 진압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중년의 시민을 보았다.
교통 통제가 한 차선만이라도 풀리려고 할 때 즈음, 아마도 새벽배송을 위해서 그 차선으로 들어와 나가기 위해 멈췄다 서다를 반복하는 유통업체의 배송차량을 보았다.
우리가 집으로 가려할 때쯤, 확성기 소리를 높이며 대오를 지켜줄 것을 요청하는 무대의 목소리를 들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믹스커피와 오뎅을 파는 가판대를 포함해 두어 개의 가판대가 설치되고 영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집에 들어와서, 와이프와 나 자신이 무사히 들어온 것에 안도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온라인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준 친구들과 지인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지지가 있어서 나는 그 자리에 나가서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치열한 현장에 계셨던 분들께도, 내가 현장 바깥에 서 있는 것이 그만큼의 힘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