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일들 중에서 그나마 회사 일이 평온한 편이었을까. 결혼을 하며 살림을 합쳤고, 신혼여행과 웨딩촬영을 다녀왔으며, 인터넷에 써서 남기기에는 너무 사생활인 많은 일들이 있었고… 2024년 12월 3일을 맞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죽는 재해가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계기를 말하고 싶다. 나는 우리 사회가 어떤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순수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은 그 어떤 '~주의'도 어떤 사회를 100% 구성할 수는 없다는 사실의 따름정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부분은 민주주의이고, 어떤 부분은 자본주의이고, 어떤 부분은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전통에 따라서 사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주의들이 우리 삶을 구성하고 지탱하고 한편으로 억압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내 관점에서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가 속한 집단의 주인으로서 의사 결정을 하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사결정과 수행, 그리고 거기서 오는 책임을 분배하는 체계이다. 그리고 이 의사결정, 수행, 책임은 다수결이나 선거, 명령으로만 성립하지 않는다. 다수결, 선거, 명령은 단지 그 행위를 실제로 행하는 사람들에게 이 행위를 해도 된다는 합리화를 위한 수많은 수단 중 일부일 뿐이다. 결국 사회의 어떤 사실은 거기 속한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거나, 사실상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사실인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에서 제일 많은 표를 받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절차를 하자 없이 통과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이 대통령인 것이 맞다고 믿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인에게 시민을 쏴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은 시민을 살해하는 행위임이 틀림없지만, 실제로 현장에 있는 군인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시민은 총알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맞다. 이것은 전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통이라기보다도, 그냥 살아온 방식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간섭이 없는 부분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해주지 않는 부분에서는 자기 스스로 일을 해야 한다. 인간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본인이 주인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으며, 민주주의란 그 영역을 공동체와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나는 사회가 각각의 구성원이 주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또한 주인으로서 의무를 행하며 살 수 있도록 지탱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다른 대안들 중에서 지지하는 이유다.
언제부터인지, 누가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는 공략법을 발견당해 조금씩 무력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 주인 되는 사람들의 파괴 행위에 취약하다. 그 주인되는 사람들의 인식을 갉아먹으면, 그 주인들이 독재를 지지하게 만들고, 그 주인들이 돈이 더 많은 사람이 돈이 더 적은 사람의 주인됨을 저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게 만들면 민주주의는 힘을 잃는다. 믿고 싶고 이해가 잘 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어떤 사람들에게 믿고 목소리높여 말하고 다니게 만들면, 사회 전체가 동의하는 사실을 없애고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사실을 만들 수 있다.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작게는 추천 시스템과 맞춤 타임라인부터, 유튜브와 숏폼, 알고리즘, 크게는 댓글부대와 황색언론, 가짜뉴스가 퍼져나가는 세상에 좀 더 제대로 된 진정하고 읽을 거리를 찾다가, 내가 그런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그런 걸 바라는 것이 우습다는 이유에서 원고를 쌓고, 플랫폼을 알아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2024년 12월 3일을 맞이했고, 글이 몇 개 준비되지 않았지만 당장 이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날부터 포스팅을 올려서 오늘에 이른다. 이게 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2024년의 마지막 한 달을 돌아보니, 이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막연히 우려했던 현상들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가 윤석열의 내란 시도를 지지하는 수많은 주인들인 것 같다. 본인들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 세상의 손바닥을 다 긁어모아서라도 하늘을 가려버리고야 말겠다듯이 활개치는 주인들,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주인들…. 내가 언제나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렵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를 쓰는 것은, 적어도 내가 이 생각을 인터넷에 써서 어떤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는데 나중에 내가 여기서 퇴보한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들이 나를 비웃거나 안타깝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쪽팔리기 싫으니까 퇴보하지 말자는 각오로 적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블로그 "대하여" 보면 간디선생님이 말했다고 알려진 그 말. 내가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기 위해서. 2025년에는 얼마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