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 어떤 '~주의'도 어떤 사회를 100% 구성할 수는 없다.
냉전이 세계의 구도를 주로 설명하던 시대에는 '공산주의 진영' 국가라거나 하는 말이 설명하는 것이 있고, 이념 간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어떤 사회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진영에 어느 국가가 속한다는 개념에서였지, 어떤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냉전이 끝나 이념간 갈등이 실용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흐지부지된 시점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 사회라고 이름붙이는 것은 실용적인 가치가 별로 없다. 단지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이 무슨 생각에 기초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균일하지 않은 여러 사람의 삶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이며, 그 모자이크는 단일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는 그 모자이크의 타일 수를 헤아려 이 사회가 몇 퍼센트는 민주주의고, 몇 퍼센트는 자본주의고 하는 계산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타일일지 정의하는 일이 백과사전의 표제를 정하는 일만큼은 어렵겠지만.
어떠한 주의는 결국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 사는 방식이고, 그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많을 수록 팽창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이런 팽창들의 개별적 사례다. 당연히, 사회에 개인 숭배를 가득 채운 사회가 건강할 수는 없다.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할 수도 없다. 모든 의사 결정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도 작동할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도 답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예시들을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자이크는 매 순간 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언제든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거나, 각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각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볼 수도 있다.